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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포토기행(길에서 길을 생각하며)

빙하기의 마지막 작품

by 아네모네(한향순) 2016. 12. 21.




빙하기의 마지막 작품

 

                                                                                                            한 향 순

 

빙하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글레이셔국립공원은 푸른빛이 감도는 새벽의 박명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세인트 메리 호수주변은 한여름인데도 한기를 느낄 만큼 추웠고 거대한 산봉우리에는 하얀 눈이 쌓여있었다.

 일출 시간이 되자 하늘에 붉은 빛이 감돌더니 맞은편의 바위산이 점점 붉게 물들고 있었다

~ 글레이셔의 일출의 빛은 이렇게 황홀하구나.”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글레이셔국립공원은 미국 서북부 쪽에 있으며 캐나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다.

전날 아침 옐로스톤을 출발한 우리는 하루 종일 북쪽으로 달려서 몬태나 주에 있는 글레이셔 국립공원 근처에 도착했다.

 그리고 몇 시간 눈을 붙인 후, 오늘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공원 안에 있는 세인트 메리 호수에 도착한 것이다.





글레이셔국립공원은 캐나다의 재스퍼, 밴프, 요호를 품고 있는 로키 마운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공원은 캐나다 지역에도 걸쳐있는데, 캐나다 지역의 이름은 워터론 국립공원이라 불린다.

이곳은 미국과 캐나다 두 나라에 의해 동시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두 나라의 국제평화공원이 되었다.

우리 일행은 세인트메리호수에서 일출을 촬영하고 로건패스에 올랐다.

로건패스는 해발 2026m고잉 투더 썬 로드의 중간지점이자 아주 넓은 주차장과 방문자 센터가 있는 곳이다.

글레이셔국립공원을 관통하는 고잉 투더 썬 로드는 이름 그대로 태양을 향해 오르는 길이다.

로건패스에 오르면 제일 먼저 캐나다와 미국의 국기를 나란히 꼽아 놓은 것이 눈에 띈다.

그 뒤로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웅장한 바위산이 보이는데, 그것은 해발 2,670Km클레멘트라는 산으로

300만 년 전 빙하기에 형성된 빙하로 한여름인데도 하얀 눈이 그대로 있었다.



글레이셔국립공원에는 억겁의 세월동안 지질구조의 변화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산봉우리와 26개의 빙하,

리고 빙하에서 흘러내린 130여 개의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지구의 온난화 영향으로 알라스카의 빙하도 녹고 있지만

이곳의 빙하도 2030년 경 에는 모두 없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글레이셔국립공원을

빙하기가 빚어놓은 작품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로건 패스에서 갈 수 있는 트래킹 명소로는 하이라인 트레일이 있다.

로건 패스에서 그래닛 팍 섈리 까지 편도 7.6마일의 하이라인 트레일은 미국의 아름다운 길 톱 텐에

들 정도로 아주 유명한 코스이다. 우리도 이 길을 걸어보기로 하고 트래킹을 시작했다

 아름다운 길로 유명한 하이라인 트레일은 바위산 모서리를 깎아지른 듯 좁은 절벽 길로 대부분 이어져 있다.

길을 걷다보면 한쪽에는 웅장한 설산이 보이고 발아래는 여러 가지 야생화가

발길을 멈추게 하는 정말 환상적인 코스였다.



두어 시간이나 걸었을까. 우리 일행들은 귀한 야생화를 촬영하느라 걷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고 있는데 갑자기 후드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곳 사람들은 비가와도 거의 개의치 않고 길을 걷는데,

 우리 팀은 습기에 약한 카메라 장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쉽지만 트래킹을 포기 하고

 출발점인 로건패스로 돌아와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



다음 코스는 히든 레이크를 보러가는 트래킹 코스인데 며칠 전 그리즐리라는 야생 곰이 발견되어

사람을 해칠까봐 출입을 막고 있었다. 우리는 일몰을 촬영하기 위해 날씨가 흐렸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웨스트 글레이셔에 있는 맥도널드 호수를 찾았다.

글레이셔 국립공원에는 빙하가 녹은 물 때문에 아름다운 호수가 여러 개 있는데 맥도널드 호수는

색색의 예쁜 돌들이 호수 주변에 깔려있어 날씨가 맑은 날에는 조약돌들이 물빛과 어울려 아름답게 빛난다고 한다.

이날은 아쉽게도 날씨가 흐려서 환상적인 일몰도 예쁜 조약돌도 보지 못했지만,

구름이 피어나는 하늘과 투명하고 맑은 호수를 만나고 돌아섰다



다음날은 운이 좋게도 히든 레이크 오버룩이 오픈을 하였기에 우리 일행은

눈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산을 올라갔다. 로건패스에는 노란 야생화가 카펫을 깔아 놓은 것처럼

피었는데 조금만 산을 올라가도 하얀 눈이 쌓여있어 스키를 들고 가는 젊은이들도 보였다.

한참 걸어 하얀 언덕을 오르자, 숨어있던 히든 레이크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설산의 멋진 반영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관이 펼쳐졌다.




오후에는 근처에 있는 부라우닝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인디언 축제를 보러갔다.

블랙 피트라는 인디언 부족인데, 각 도시나 주변 나라에서도 모두 참석하는 거대한 행사답게 준비가 만만치 않았다.

축제라기보다는 한풀이 같은 그들의 음악과 춤사위를 보면서 왜 그렇게 애절한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백 명의 인디언들이 그들 고유의 춤과 노래를 부르면서 행진을 하는데

무언지 모를 슬픈 감정들이 북받쳐 올랐다. 노인네부터 젊은 청년과 아이들까지 그들의 한을 풀어내는

 마치 굿판 같은 느낌이었는데, 인디언의 춤과 노래 속엔 오래 전 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긴 한 맺힌 절규가 들리는 듯 했다.

 



어쩌면 인디언들의 삶의 터전이 없어진 것처럼 글레이셔의 빙하도 얼마 후에는 다 녹아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기에 빙하가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라고 글레이셔국립공원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는 자연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 태어나는

생명의 주기에 따라 거듭나는 것이리라. 아쉬움을 가득 안고 글레이셔국립공원을 떠나며

빙하가 녹기 전에 다시 찾아 올 수 있을지 기약 없는 발길을 돌렸다.

 




                             2016년 11,12월호 <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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