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신기루 모래섬 풀등
한 향 순
신비한 모래섬을 만나러 바다 길을 떠났다. 바다는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을 뻥 뚫어주고 머리를 시원하게 해주는 특별한 존재이다.
인천 여객터미널에서 카페리를 타고 두 시간 반쯤 달리면 자월도,
승봉도를 거쳐 아담한 섬 대이작도에 도착한다.
대이작도는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에 속한 자그마한 섬인데,
가구 수도 그리 많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섬이다.
이 섬은 고려시대부터 말을 사육하던 곳으로 조선말까지 군마활동을 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전설로는 옛날부터 해적들이 많이 은거하여 이적도로 불리던 곳이
이작으로 불리게 되어 대이작도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우리를 마중 나온 민박집 아저씨의 트럭을 타고 바람을 가르며 십여 분쯤 달리니
바다가 손에 잡힐 듯 아름다운 해안가에 아담하게 들어앉은 우리의 숙소가 보였다.
짐도 풀기 전에 우리는 바다에 허기 진 사람들처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다로 나갔다.
고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해변에는 푸른 파도가 서로 어깨동무할 뿐 아무도 없었다.
역사와 인문학에 일가견이 있는 민박집 주인은 사람 좋은 웃음으로 우리를 환대해 주고
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맛있는 점심도 차려주었다.
대이작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푸른 바다에는 하루에 두 번씩 환상적이고 광활한
모래톱이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뭍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시한부 모래섬이다.
‘풀등’ 또는 ‘풀치’라 부르는 이 모래섬은 밀물 때는 바다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만 바다 위로 나타난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사리 때는 길이 5km, 폭 1km의 거대한 자태를 드러내기도 한다.
대이작도에서 풀등에 가려면 작은 풀안 해수욕장으로 나와 낚싯배나 모터보트를 이용해야 한다.
우리도 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물때가 되어 기대했던 풀등에 가기 위해 트럭에 올라탔다.
이 섬에 대중교통은 없고 팬션이나 민박집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있는데
우리는 그것도 없어 주로 트럭을 이용했다.
작은 풀안해수욕장 동쪽 해안에는 나무로 만든 데크 산책로가 개설돼 있는데,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 정자가 있고 그 밑에 배를 댈 수 있는 작은 선착장이 있다.
그곳에서 작은 배를 타고 오 분쯤 달리니 넓은 모래톱에 닿았는데,
금방 물이 빠진 모래섬은 생각보다 단단하여 발이 빠지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에서 예쁜 조개껍질들이 막 샤워를 마치고 사람들을 반긴다.
또한 모래 위에는 바람과 파도가 뒤엉켜 춤을 추다 도망 가버린 흔적들이 나타났는데,
여러 가지 패턴과 기하학적인 물결무늬들이 어울려 자연이 만든 훌륭한 작품이 되고 있었다.
미처 바닷물이 빠지지 못한 작은 웅덩이에는 붉어지기 시작하는 저녁 하늘의 반영이 그대로 비치고
우리 일행들은 신비한 광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뿔뿔이 흩어져 분주했다
.
이 모래섬이 바다에 떠있는 시간은 고작 서너 시간이기에 마법에 걸린 신데렐라처럼
그 시간 안에 우리는 이 섬을 샅샅이 돌아보고 촬영을 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모래섬은 서서히 물속에 가라앉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흔적을 남기지 않고 바다 속에 잠길 것이다.
그리고 또 날이 새고 썰물이 시작되면 조금씩 등허리를 드러내는 마법의 모래섬 풀등.
어느덧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서서히 어둠이 몰려오자 바다위에는
희뿌연 안개가 몰려오고 모래섬은 더욱 신비한 분위기로 변하며 우리의 발길을 붙들었다.
그러나 밀물은 점점 주위로 밀려들고 아무리 아쉬워도 섬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매달리는 처자의 치맛자락을 뿌리치듯 우리는 아쉬움을 남기고 모래섬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맛있는 바비큐로 저녁을 먹으며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고 작은 섬의 밤은 도란도란 깊어갔다.
하늘을 보며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떠올렸고,
분위기에 들떠 소율 시인의 <여전히 풀등>도 읊조렸다.
여전히 풀등
울지 말아요. 그대
세상은 온통 꽃밭인 걸요
파도가 유난히 뒤채고 나면
창백해진 얼굴로 바다는 달려 나가고
끝도 없는 저 모래사막을 뚫고
거뭇 누웠던 꽃들 다시 피어오르고
가마우지 흉터를 안고
당신은 언제나 저만치 있고
혹 간밤에 내가 단잠을 이뤘던가요.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이곳은 여전히 풀등
그 외로운 풀등에 서서
그대여, 울지 말아요. 제발
소율 시집 <내 얼굴 위에 붉은 알러지>에서
이튿날 이른 아침 우리는 또 다시 풀등과 재회를 했다. 아침의 모래섬은 어제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말간 얼굴을 금방 씻은 듯 신선하고 상큼하였다. 상쾌한 바닷바람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가고
멀리 보이는 작은 섬들이 안개속의 수묵화처럼 아련히 다가온다.
간간이 지나가는 배들이 조그맣게 보이고 우리는 신선들이 노니는 모래섬에서
보물찾기를 하듯 숨은그림찾기를 하였다.
모래톱에 새겨진 갖가지 추상화는 자연이 만든 훌륭한 작품이었다.
망망대해에서 혼자 떨어진 영토 하나, 누구의 위로도 받지 못하고
홀로 떠있는 섬처럼 우리도 가끔 섬처럼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내가 당신에게 흐르다 멈춘 섬처럼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섬이 되어 살아간다.
가끔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섬을 그리워하듯이 풀등에서의 이틀간의 기억을 그리워 할 것이다.
신기루 같은 모래섬을 찾아 떠난 이번 섬 여행은 비록 일박 이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아무런 소음도 없고 어떤 공해도 없는 청정해역에서 몸과 마음을 완전히 이완시키는 힐링 여행이었다.
2016년 7,8월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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