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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포토기행(길에서 길을 생각하며)

30년 만의 해후, 그리운 알프스

by 아네모네(한향순) 2016. 1. 8.

 

 

 

30년 만의 해후, 그리운 알프스

 

                                                                                                                                                    한 향 순

 

30년이 흘렀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어도 설산은 옛 모습 그대로 하얀 베일을 쓴 채 꿋꿋한 위엄과

기상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풋풋하던 젊은 시절 꿈을 가득 안고 서유럽을 여행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리워하던 알프스에 다시 올수 있었던 것은 정말 커다란 행운이었다.

아마도 로마의 트래비 분수에서 다시 오게 해달라고 동전을 던진 덕분인지 모르겠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이어서 해외여행은 선택 받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잠시 해외근무를 하던 남편이 귀국을 하면서 유럽여행을 하자고 나를 불러냈다.

그때는 아이들도 어리고 집안 대소사에 걸리는 것도 많았지만 나는 눈을 딱 감고 남편을 따라 여행길에 올랐다.

 

 

그 시절에는 개발도상국에 있던 우리나라를 떠나 유럽에 오니 서양문화와 중세의 유적지들이

모두 눈이 휘둥그레 질만큼 신기한 것들뿐이었다.

 특히 스위스로 건너오니 거리마다 갖가지 꽃이 즐비하게 심어져 있고 동화 속 마을 같은

집의 창가에는 하나같이 예쁜 꽃들이 놓여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못 보던 풍경이어서

마치 천상에 온 느낌이었다.

 

지난해 겨울 호주에서 살고 있는 손자들이 방학을 이용하여 한국에 왔다.

제 부모는 바빠서 함께 오지 못하고 9, 11살 두 형제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러온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을만한 선물을 생각하다가 유럽여행을 감행하게 되었다.

더구나 더운 나라에서 눈 구경을 못하던 아이들은 스위스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다.

 청정한 자연환경은 호주와 별로 다를 것이 없을 텐데도 알프스는 항상 흰 눈이 쌓여 있는

만년설산이라고 하니 호기심에 아주 궁금해 하였다.

 

 

프랑스에서 고속열차 떼제베를 타고 스위스로 넘어와서 버스를 갈아타고 인터라겐을 향해 달리는데,

 차창 밖으로 내내 하얀 설산이 보였다. 그 산 넘어가 바로 우리의 목적지 니더 호른산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고 우리는 30년 만에 한 세대를 뛰어 넘어 초로의 여행자가 되어

손자들과 다시 스위스를 찾아온 것이다.

 

니더 호른에 오르기 위해서는 후니쿨라라는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다가 다시 다른 곤돌라를

바꿔 타고 1950미터 정상에 도착한다.

 다른 알프스의 연봉들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니더 호른은 설산을 등반하기 위한 등반 객들과

 행글라이더를 즐기려는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아이들은 눈을 보더니 환호성을 울리며

하얀 언덕에 마구 딩굴며 눈을 뭉쳐서 눈싸움을 하거나 심지어 먹어보기까지 한다.

 

 

산 정상에서 건너편을 굽어보니 알프스의 심장 같은 푸른 빛깔의 툰 호수가 보이고 호수를

에워싼 하얀 설산들이 도열을 하는 것처럼 위용을 뽐내며 버티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귀에도 익숙한 융프라우, 묀히 그리고 아이거 같은 유명한 알프스의 연봉들이

흐르는 운해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는 정작 그곳의 실체를 보기 어렵듯이, 오히려 조금 떨어진 니더 호른에서

알프스의 거대한 봉우리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사이도 비슷한 것 같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 있다 보면 전체적인 모습보다는

그 사람의 한쪽 면만 보이고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인양 뇌리 속에 굳어버리고 만다.

가끔은 거리를 두고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안보이던 부분도 시야 속에 들어오고

전체적인 판단력이 생기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고 있다면 한번쯤 그 사람에게서 떨어져서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눈 장난을 하며 즐거워하고 우리는 차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들어갔다.

니더 호른 정상에는 알프스를 조망하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야외 카페가 있었는데 탁자나 의자의

 색깔이 모두 빨간 색이어서 퍽 인상적이었다.

하얀 눈 속에서 빨간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외국여인을 보며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옛날에 우리도 하얀 눈 속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한껏 멋을 부리며 카페에 앉아 찍은 사진이 있었다.

지금은 비록 늙었지만 우리에게도 그렇게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는 추억은 보석처럼 아름답고 소중하다.

 

 

아이들과 여행을 하며 많이 힘들기는 했지만 또한 행복하고 즐거웠다.“진정한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라고 바르셀 푸르스트는 말했다.

훗날 우리 아이들이 이번 여행을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지만 좀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문화를 포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할미의 마음이다.

 

 

 

격월간 <여행작가 > 2016,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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