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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포토기행(길에서 길을 생각하며)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곳

by 아네모네(한향순) 2017. 7. 21.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곳  (아이슬란드 2)

                                                                                                                                                                                                  

                                                                                                                                                                                            한 향 순                                      

 

영화 <인터스텔라><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촬영한 곳이 아이슬란드여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을 엿보는 듯한 아이슬란드의 경이로운 풍경들은 언제부터인가 나의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그 꿈이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져서 올해 2월 사진출사 팀을 따라 아이슬란드에 가게 되었고,

16일 동안 머무는 사이에 지난 호에도 밝혔듯이 보기 힘들다던 오로라를 첫날부터 만났다.

아이슬란드는 섬나라답게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날씨가 나쁘고 눈이 오는 날은 꼼짝없이 갇혀 지내야 했다.

다행이 우리가 도착한 날부터 닷새 동안은 계속 날씨가 쾌청하여 우리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강행군을 했다.

 

또한 아이슬란드는 물가가 무척 비쌀뿐더러 우리 입맛에 맞는 식당도 찾기가 쉽지 않아

주로 리더가 준비해온 재료를 이용하여 밥을 해먹다보니 여러 식구가 세끼를 해결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하루에 한 끼 정도 외식을 할 때는 그저 간단한 메뉴를 선택하여 시간을 절약하려고 애를 썼다.

다행이 아이슬란드의 숙소들은 관광 대국답게 취사도구가 비치되어 있어 재료만 있으면 밥을 지어먹을 수 있었다.





나흘째 되던 날, 우리는 북부 아이슬란드 쪽으로 올라가 크빗세르쿠르 근처에 도착했다.

크빗세르쿠르는 북부아이슬란드 바튼스네스 반도의 해안가에 있는 현무암 바위이다.

오랜 세월동안 파도와 바람에 깎여서 15미터쯤 되는 바위는 마치 물을 먹고 있는 공룡의 모습 같다.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노곤한 몸을 눕히려고 하는데, 리더가 오늘도 일기예보가 좋아 쉴 수가 없으니

촬영준비를 하여 나오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촬영준비를 하여 해안가에 도착하니

길이 어찌나 미끄러운지 아이젠을 신었는데도 비탈길을 내려가려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렸다.

그러나 크빗세르쿠르에 도착하여 조금 있으려니 바다에서 초록빛을 내는 공작새가 올라와

하늘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공룡바위와 황홀한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는 마치 무도회에 초대된 손님처럼 무엇에라도 홀린 듯 서너 시간 꿈속의 오로라 촬영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도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다시 길을 떠났다.

아이슬란드의 마을들은 점으로 연결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연결 되어있는 느낌이다.

1번 국도인 링로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끝없이 뻗어있는 길 위로 파노라마 같은 절경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지만 가장 고독한 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링로드를 따라

우리는 다시 수도인 레이캬비크를 지나 골든 써클 중의 하나인 굴포스를 만나러 갔다.

굴포스는 황금폭포라는 뜻으로 두 개의 상단폭포와 하단폭포로 이루어진 거대한 폭포이다.

그곳에서 다시 오로라를 영접하고 다음날은 멀지않은 곳에 있는 간헐천 게이시르를 보러갔다.

아이슬란드는 얼음과 불이 공존하는 나라이다. 빙하의 땅속에는 항상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지나다보면 땅 위에서 온천처럼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곳을 자주 볼 수 있다.


게이시르는 아직도 뜨거운 물이 반복적으로 하늘 높이 솟구치는 간헐천이다.

물의 온도가 엄청 뜨겁기 때문에 화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사람들의 접근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 간헐천을 보더라도 아직 활동을 멈추지 않은 아이슬란드의 활화산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다시 1번 국도를 타고 하루 종일 남쪽으로 내려와 비크라는 남부 도시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쉬는 것도 습관이 안 되니 지루하여 해결책으로 현지 얼음동굴 투어를 하기로 했다.

현지 관광회사를 이용하여 가는 차는 바퀴가 트레일러 정도로 커서 눈 위에서도 빠지지 않고 안전하다고 했다.

요쿨살론에서 울퉁불퉁한 길을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흔들리며 한 시간 정도 달리니 마치 이글루를 닮은 커다란 얼음동굴이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 갈수록 푸른색이 감도는 얼음동굴은 어떻게 여름에도 녹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놀라웠다.

하기는 수천 년 동안 만들어진 빙하이니 쉽게 녹지는 않겠지만 이곳에도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면 빙하들도 점점 녹아서 사라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푸른 조명을 켜놓은 것처럼 얼음동굴 안은 온통 푸른빛으로 영롱한 색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기하여 동굴을 만져보거나 두드려보고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비크 근처의 유명한 해변 레이니스피아라는 검은 모래로 이루어진 곳이다.

해변에는 사각형 모양의 크고 작은 돌기둥이 쌓여진 현무암 주상절리가 있다.

그곳에는 여러 개의 동굴도 있는데 간조 때에만 드나 들 수가 있다.

디르홀레이라는 코끼리를 닮은 거대한 현무암바위도 비크의 명물로 손꼽히고 있다.


다음 행선지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기대하였던 요쿨살론이라는 거대한 빙하호수이다.

남부 아이슬란드를 덮고 있는 유럽최대의 빙하 바트나요쿨이 녹아서 흘러내린 빙하가

수천 년 동안 바닷물과 합쳐져서 만들어진 거대한 빙하 라군이다.

넓은 호수위에 맑고 푸른빛의 커다란 빙산들이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모습으로 둥둥 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경이롭고, 상상 속의 장소에 내가 와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커다란 유빙들이 호수에서 흘러내려 넓은 바다로 흘러가는데 더러는 파도에 부딪쳐서 해변에 남기도 한다.

검은 모래로 된 해변에 여러 가지 색깔이 오묘하게 섞여있는 빙산 조각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면

마치 다이아몬드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다이아몬드 비치.

우리 일행은 집중적으로 이곳에서 머물며 촬영을 하기로 마음먹고 근처에 숙소를 정했으나

그날부터 날씨가 흐리거나 눈이 오면서 며칠 동안 긴 휴식기간에 들어갔다.

아이슬란드 남부는 북부보다 날씨가 따뜻하여 큰 눈은 없었으나 길도 미끄럽고

우리가 원하는 촬영을 할 수가 없으므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귀국하기 이틀 전, 날씨가 모처럼 쾌청하고 맑게 개었다.

우리는 이날을 마지막 디데이로 정하고 철야촬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침부터 단단히 준비를 하고 요쿨살론에 나와 거대한 빙하 라군을 빙 돌아가며 촬영하였다.

저녁 어스름이 되고 일몰이 되자 멋진 구름층이 몰려와 하늘은 마치 천지창조 같은 신비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빙하와 호수에 반영된 하늘의 풍경은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만들었다.

차안에서 잠시 끼니를 해결한 우리는 밤이 깊어지자 오로라를 만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호수로 나갔다.

오로라를 기다리는 시간은 초조하다 못해 가슴이 타는 것 같았다.

까만 어둠속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구름이 서서히 걷히며 오로라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붉은색이 도는 초록색으로 느릿느릿 활동을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왕성한 기운으로 춤을 추었다.




차안에서 앉은 채로 잠시 졸다가 날이 훤해지는 것을 느끼고 얼른 차에서 내려

다이아몬드 비치로 나가니 어느새 하늘이 붉어지며 여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커다란 유빙 덩어리들이 바다에 둥둥 떠다니다가 검은 모래 해안에 안착을 하고 흩어져 있는 모습은

정말 보석을 뿌려놓은 것 같이 신비스럽고 아름다웠다.

드디어 기다리던 일출이 시작되고 찬란한 빛이 얼음을 비추니 속살까지 드러낸 빙산조각들은 색색의 기묘한 무늬를 드러냈다.


이번 우리 팀은 날씨가 좋아서 오로라도 실컷 보고 계획했던 촬영도 거의 빠짐없이 마쳤다.

나는 개선장군처럼 뿌듯한 마음으로 귀국을 서둘렀다.

무엇보다 우리부부를 비롯하여 여덟 명의 일행 중 탈락자나 아무런 사고도 없이 무사히 출사를 마칠 수 있는 것이 큰 다행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니 좋은 촬영과 멋진 풍경을 담으려는 욕심 때문에

동분서주하면서 동동거렸지 아이슬란드를 좀 더 느긋하게 즐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언제쯤이나 이런 욕심도 내려놓고 유유자적 한가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지 부끄럽기만 하다.








2017년 7,8월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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