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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포토기행(길에서 길을 생각하며)

세피아 톤의 중세도시들

by 아네모네(한향순) 2017. 11. 26.



세피아 톤의 중세도시들

 

                                                                                                                                                              한 향 순

 

여행을 하다보면 그 도시에 어울리는 색깔이 떠오르곤 한다. 남프랑스 지역을 여행하며 만났던 중세풍의 건물들과

오밀조밀한 골목길이 화사한 세피아 톤으로 연상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기자기한 여러 마을들이 오래 전 사진집에서

보았던 빛바랜 흑백사진의 배경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지 모르겠다.

새파란 하늘아래 이글거리는 남프랑스의 태양, 그 아래 깊은 역사와 오래된 문화를 담고 있는 중세풍의 건물들.

여유와 낭만이 몸에 배어있는 프로방스 사람들과 보랏빛 라벤더 향기가 아직도 코끝에 남아있는 것 같다.

묵은 김치처럼 오래 된 친구의 제안으로 둘이서 남프랑스 여행길에 올랐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곳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휴양지 니스였다.

그러나 니스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해 줄 버스가 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연락이 되었는데 교통사고로 길이  막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여행 첫날부터 일이 꼬여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할 수 없이 각자 택시를 타고 가이드가 알려준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일이 꼬이려니 물어물어 찾아간 식당이 이름만 같은 다른 식당이었다.

한 도시에 똑같은 이름의 식당이 또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결국은 여행 첫날부터 힘에 부치는

커다란 트렁크를 질질 끌고 트램을 타고 먼 길을 돌아서야 뒤늦게 일행들과 합류했다.




우리 일행은 늦게 점심을 먹고 버스로 3시간이나 걸리는 아비뇽으로 갔다.

아비뇽은 프로방스 지역의 중심 도시이자, 유서 깊은 역사 도시이다.

아비뇽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는 론강과 아비뇽 다리이다.

생 배네제 다리라고도 불리는 교각위에는 작은 예배당이 있고 뒤쪽으로는 론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한때 이탈리아 화가 마테오 조반네티가 전 세계의 화가와 예술가들을 불려 들여 번성했던 도시답게 아비뇽의 건축물들은 모두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우리에게 알려진 아비뇽 유수라는 역사적인 기록처럼 한때는 교황청 소재지가 되어 약 70년 동안 7명의 교황님들이 거주를 하였다고 한다.

그 교황청은 프랑스 혁명 때까지 교황령으로 있다가 1791년에 프랑스령이 되었다.

광장에 들어서자 웅장하지만 바티칸에 비하면 소박한 교황궁이 떡 버티고 있고 철제 조각품이

마치 환영하듯 손을 벌리며 반기고 있었다.

친구와 시청 앞 광장 카페에서 이번 여행이 아무 탈 없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맥주로 건배를 외쳤다.




이튿날 행선지는 레 보드 프로방스의 빛의 채석장이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몰리기전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다.

 까리에르 드 뤼미에르라는 동굴은 100년 동안 활발하게 석회암을 채굴하던 광산이었다.

그러나 근래에 철과 콘크리트가 나오며 석회는 쇠락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광산이 폐쇄되었다.

1997년 체코의 무대예술가 요셉 스노보다가 빔 프로젝트로 채석장의 벽과 바닥 천장을 스크린 삼아

전시를 연 것을 시작으로 매년 여러 주제의 미술 작품들을 빛으로 재구성하여 영상미술 전시를 하고 있다.

 그동안 반 고흐, 모네, 피카소와 샤갈 그리고 구스타프 크림트와 마티스등의 그림을 전시하였다고 한다.

처음 빛의 채석장에 들어서자 우리는 웅장한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절묘하게 어울리는 음악에 따라 영상들은 스토리를 이어가 듯 장면을 전환한다.

 갑자기 들어선 실내는 어두운데다 커다란 화면과 마음까지 사로잡는 웅장한 음악,

대형의 전시 규모와 100여 개의 빔을 쏘아 빛을 연출한 시스템에 놀라 어리둥절하게 된다.

차츰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면 주변이 조금씩 보이고 길을 따라 이동 할 수도 있고 곳곳에 마련해 놓은 의자에 앉아 그림을 감상 할 수도 있다.

아직 식지 않은 감동을 뒤로하고 채석장 밖을 나오면 눈부신 프로방스의 태양이 하도 강렬해서 눈을 바로 뜨기 어렵게 한다.

.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미술계의 거장 반 고흐가 사랑한 도시 아를이다.

프랑스의 로마로 불리는 아를은, 아비뇽과 함께 프로방스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도시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도시이자 프랑스의 대표 소설가 알퐁스 도데의 아를의 여인에 등장한 예술의 도시다.

고흐는 1년간 아를에 머물면서 수많은 작품을 남길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카페 테라스등의 대표작을 아를에서 탄생시켰다.

반 고흐 때문에 더 유명해진 아를에서는 곳곳에서 고흐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그의 그림의 배경이 되었던 정원과 매일 나와서 커피와 독주인 압생트를 마셨던 카페,

그리고 고갱을 이곳에서 만난 후, 귀를 자르고 입원을 하였던 시립 정신병원 등

생전에 고흐의 힘들었던 삶을 생각하며 그의 흔적들을 따라가 보았다



이튿날은 일찌감치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였다. 어느덧 아침 안개사이로 언덕 위의 작은 마을이 올려다 보였다.

작고 아담하지만 바로 샤갈이 살았던 마을로 유명한 생 폴 드 방스이다.

 지금은 신예화가의 공방이나 작은 갤러리가 많지만 아기자기하고 예쁜 집들이 밀집해 있는 동네이다.

하기는 샤갈뿐이 아니라 마티스 르느아르 피카소도 잠시 이곳에 머물던 도시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걸어가는 길 위에도 해바라기 모양의 무늬를 만들어 장식을 해놓았으니 이곳에 오면

정말 예쁜 것이 너무 많아 골목의 정취를 느끼며 마냥 걷고 싶은 길이다.

샤갈은 유태인으로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을 하였는데

  남프랑스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였고 이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래서 그의 무덤도 이곳 생 폴 드 방스에 있다.



프랑스의 남부 예술도시 프로방스(Provence)’는 프랑스의 매력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또 프로방스는 반 고흐, 샤갈, 세잔 등 세계적인 예술가의 영감을 자극했던 곳이기도 하다.

프로방스를 돌다보면 숱한 예술가들과 여행자들이 프로방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특히 프로방스 여행의 참 맛은 자그마한 시골마을에서 느낄 수 있다. 따스한 햇살과 바람,

프로방스 특유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자연풍경, 그리고 코끝을 스치는 특유의 라벤더 향기.

소박하지만 가슴에 큰 여운을 남기게 하는 매력 요소들이다.



2017년 11,12월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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