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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내 몸을 들여다보며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7. 13.

내 몸을 들여다보며

 

  모니터에 보이는 장면은 마치 커다란 동굴에 무언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꾸불꾸불한 동굴 안에는 물과 거품이 보이기도 하고 조그만 돌들도 보이는 것 같았다. 검사를 하느라 복부의 팽만감과 통증 때문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나에게, 검사 요원은 모니터를 쳐다보라고 했다. 그의 말을 따라 가까스로 눈을 들어 보니 내시경을 통하여 들어가는 내 대장의 모습이 마치 동굴 탐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우연히 대상포진이라는 병을 앓았다. 그 것은 대개 면역력이 결핍되어 온다는데 굉장한 통증을 동반하는 바이러스성 질병이었다. 진통제도 잘 듣지 않을 만큼 심한 통증이 계속되다가 며칠 후에야 발진이 생기는데, 발진이 생기기 전까지는 무슨 병인지도 얼른 알 수 없었다. 그 병의 치료가 거의 끝나갈 무렵, 의사 선생님은 체내에 면역력이 떨어진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니 몇 가지 건강검진을 해보자고 하셨다. 특히 몸 안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을 경우 대상포진이 잘 생긴다고 겁을 주었다.

 

  그래서 몇 차례에 걸쳐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오늘은 대장 내시경을 하게 된 것이다. 이미 받아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절차가 보통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전날부터 음식을 조절해야하고 물고문을 받는 것처럼 뿌연 소금물을 4리터나 먹으며 대장을 깨끗이 비워야 비로소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그런 다음 검사실에서 대장에 가스를 잔뜩 집어넣어 부풀린 다음 내시경을 통하여 장 내부를 탐사하듯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하고 싶어서 받는 이는 없겠지만 건강 검진을 받는 며칠 동안은 몸과 마음 모두 힘들었다. 끈적이는 하얀 약을 먹고 위압적인 기계 앞에서 몸을 공깃돌 굴리듯이 하며 방사선을 찍는 일이나, 몸 안에 내시경을 집어넣고 휘젓는 일들은 정말 피하고 싶은 고역이었다.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상례였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눈을 크게 뜨고 모든 과정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대장뿐 아니라 위와 폐, 그리고 내 몸의 일부인 장기들을 모니터를 통하여 상세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내 몸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아주 낯설었다. 거울을 통하여 눈에 익은 얼굴이나 신체의 모습에 비하면 ‘과연 저것이 무엇일까’라고 의문이 생길만큼 생소하고 무지했다. 학창시절에 생물도감을 보고 몸속의 장기들을 공부하긴 했지만, 그때는 그저 무심히 넘겼는데 며칠 전 친구와 우연히 “신비한 인체 한국 특별전”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증한 인체들을 특수 약품처리를 하여 우리 육안으로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도록 전시를 해 놓았다. 신이 내린 가장 위대한 창조물은 바로 우리 몸이라고 한다. 인체 안에는 우주의 진리와 함께 인간 생로병사의 비밀이 가득 숨어 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가깝고도 먼 미지의 세계였으며, 지금까지 일부 의학계 종사자들을 제외하고는 신비로운 몸 속 세상을 직접 체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전시회에서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우리 인체의 비밀들을 낱낱이 파헤쳐서 직접 보고 느끼게 해주었다.

 

  그곳에는 160여 점의 몸의 각 장기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직업이나 특징에 따라 발달된 근육이나 혈관 등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16구의 전신의 인체도 있었다. 그것들은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던 인체의 지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아주 충격적이었다. 산호초처럼 생긴 기관지와 폐정맥도 있고,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된 후. 올챙이 모양이 되었다가 5~8주가 되면 태아의 모양이 급속도로 변하는 과정도 있었다.

 

  더구나 흡연이나 나쁜 생활습관 때문에 망가지는 폐와 장기의 모습들도 그대로 공개되어 있어 보는 사람에게 섬뜩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전문적인 지식들도 알게 했는데, 인체의 혈관은 모두 일천 억 개가 넘으며 만약 일직선으로 연결하면 10만 킬로가 넘는다고 했다. 그것은 지구를 두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길이라니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또 머리카락은 평생 동안 약 563 킬로가 자라고, 우리는 대략 하루에 2340번의 숨을 쉬고 750번의 근육을 움직인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겉모습에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성형을 하거나 예뻐지려고 노력을 하지, 정작 자기 내부의 모습에는 관심도 없고 무지한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눈에 보이는 것에만 가치를 두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그러나 건강하게 살기위해서는 가끔 자기 몸의 내부도 들여다보며 놀라운 경험을 통해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한 소박하고 깨끗한 마음자리를 지니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건강한 신체 안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 수 있을 것이다.

 

  검사를 마치고 나니 대장 안에서 조그만 용종을 떼어내 조직검사를 의뢰했다고 한다.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미리 미리 점검을 해서 대처를 한다면 별 탈이 없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스려본다. 검사를 하는 동안 너무 마음을 졸이고 긴장을 했던 탓인가, 병원 문을 나서는데 어찔하니 현기증이 나며 발길이 휘청거렸다.

 

                                                                                 200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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