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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상식이 있는 사람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7. 14.

상식(常識)이 있는 사람

한 향 순

 

  12월도 얼마 남지 않은, 세모(歲暮)를 눈앞에 둔 즈음이었다. 이맘때가 되면 늘 가슴이 허전하고 무언가 잃어버린 것처럼 허둥대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속절없이 또 한해가 가고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의 휘둘림에 멍청해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울한 내 기분을 아는 것처럼 서울에 있는 친구가 내가 사는 동네로 찾아왔다. 그 친구도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10여 년 전쯤의 일들을 이야기하였는데, 어느덧 그 시절은 까마득히 흘러간 추억 속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미처 변화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세대는 이제 인생의 주역에서 멀리 밀려난 느낌이었다.

 

  친구와 헤어진 지 5분이나 지났을까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차를 돌리려다 다른 차와 접촉사고가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가던 길을 되돌려 사고 현장에 가보니, 친구가 후진하던 차에 어떤 중년 여인의 차가 부딪힌 모양이었다. 그 친구는 운전 경력 20년이 넘는 아주 베테랑 드라이버였는데 어쩌다가 이런 실수를 했는지 의아스러웠다.

 

  다행이 사소한 접촉사고여서 친구의 차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고 상대방 차의 앞부분이 조금 찌그러져 있었다. 으레 접촉사고가 나면 서로의 잘못을 따지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상례이지만, 번거로운 걸 싫어하는 친구는 모든 책임을 자기가 떠안고 상대방에게 정중히 사과를 했다. 더구나 바로 앞에 내가 단골로 다니던 정비업소가 있어 상대의 차를 원상복구 해주기로 약속을 하고 우리는 불행 중 다행이라며 허탈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얼마쯤이나 흘렀을까 정비 업소에서 전화가 왔다. 사고가 난 여인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몸이 여기저기 아프니 그냥은 합의를 못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때는 분명히 아무 말도 없었고 차를 고쳐주겠다고 했을 때도 쾌히 승낙을 했는데, 이제 와서 몸이 아프다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더구나 속력을 낸 것도 아니고 서서히 후진을 하다가 유턴을 하던 차를 보지 못해서 부딪힌 일이라서 차체에 약간 흠이 난 것뿐이었다.

 

  더구나 그 곳은 유턴을 할 수 없는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무리하게 차를 돌리다가 난 사고이니 시시비비를 따져서 대처하라고 오히려 우리에게 충고를 해주었다. 운전을 하다보면 내가 실수를 해서 남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고, 또한 남이 잘못해서 나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큰 사고가 아니고 미미한 접촉사고일 때는 정말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상식선에서 처리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나마 먼저 이쪽에서 잘못을 시인하고 정중히 사과를 했으면 다행이 아닌가. 그러나 상대방은 친구가 선선히 차를 고쳐주겠다고 하자 욕심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놀란 가슴에 여기저기 아프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들어도 터무니없이 상대방을 골탕 먹이려는 의도로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을까 싶어 친구보다 오히려 내가 더 속이 상했다.

 

  날이 밝으면 그 여인을 찾아가서 따져보리라 생각하며 잠을 설치고 있자니, 올 봄에 있었던 유쾌한 사고가 생각났다. 운전이 미숙한 딸아이가 차를 가지고 나갔는데 얼마 후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공간이 좁은 지하 주차장에 들어갔다가 남의 차를 들이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불안한 마음이었는데, 사고 소식을 듣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부리나케 현장에 달려가 보니 주차를 하다가 하얀색 새 차의 옆구리를 받아버린 것이었다.

 

  드디어 조금 후에 차의 주인이 내려왔는데, 의외로 나의 미안해하는 모습에 “운전이 미숙하면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죄인처럼 주눅이 들어있던 딸아이와 나는 밝은 얼굴로 정중히 사과를 하고 차를 고치기 위해 정비 업소에 가자고 하였다. 그는 바쁜 일이 있어 당장은 갈 수 없으니 며칠 후에 고치겠다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이다가 나는 수리비의 예상액을 현금으로 주면서, 수리비가 초과될 때는 연락을 해달라고 말하고 우리는 집으로 왔다.

 

  한동안 그에게서 연락이 없어 우리는 차츰 그 사고를 잊어버릴 즈음이었다. 어느 날 젊은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얼마 전 접촉사고를 당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그동안 바빠서 차를 고치지 못하고 있다가 얼마 전에야 수리를 하였는데, 받은 돈에서 오만 원이 남으니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으며 당연히 수리비가 모자라니 더 달라는 말을 예상하고 있다가 너무나 뜻밖의 이야기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금액이 적고 많음이 문제가 아니라, 번거로움을 마다 않고 굳이 연락을 하여 남은 돈을 돌려주겠다는 젊은이의 행동이 너무 가상(嘉尙)해서였다. 그동안 찌그러진 차를 타고 다니며 마음고생도 했을 것이고 새로 뽑은 차를 망가트려서 미안하니 위로금으로 생각하고 안 돌려주어도 된다고 몇 번이나 사양을 했지만, 기어이 그는 돈을 보내오고 말았다.

 

  나는 그때 너무 감동을 받아 만나는 사람한테마다 이렇게 정직한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 사회가 건강한 것이고 우리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허풍을 떨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사람의 행동은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이었다. 상식(常識)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풀이에는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거나 가져야할 일반적인 지식이나 교양이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주위에 상식을 모르는 사람이 하도 많다보니, 상식적인 보통사람이 돋보이고 희귀하게 생각되나 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모든 문제를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우리 사회에 갈등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보통사람이 갖추어야 할 상식마저 저버리기 때문에 갈등과 반목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200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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