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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호칭에 대하여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7. 14.

호칭에 대하여

한 향 순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초조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예상했던 것처럼 좌석버스 안은 만원이라 빈자리가 없었다. 비가 와서 우산과 핸드백에 오늘 전해줄 물건까지 들고 서있으려니 이리저리 중심을 못 잡고 차가 쏠리는 대로 몸이 기우뚱거린다. 이런 상태로 한 시간 이상을 버텨야 된다고 생각하니 난감하기만 했다. 더구나 날씨 탓인지 길이 막혀 버스가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으니, 힘은 들고 짜증까지 났다.

 

  수도권에 있는 우리 집에서 서울 도심으로 들어가려면 좌석버스가 가장 편한 교통수단인데, 사람이 많다보니 가끔 서서 갈 때가 있다.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걸리니 급한 일이 아니면 다음 차를 타거나, 갈아타더라도 전철을 이용한다. 그러나 오늘은 시간도 빠듯했고, 비도 내려서 그냥 버스를 탔다.

 

  사람에 밀려 버스 중간쯤에 있는 출구 쪽으로 오니 60대로 보이는 초로(初老)의 신사가 신문지를 깔고 출입구 계단에 걸터앉아 있었다. 가끔은 다리가 아픈 할머니들이 궁여지책으로 그곳에 앉아계신 것은 보았지만, 남자분이 오죽 하면 체면도 버리고 그곳에 앉았을까 싶었다. 그러나 체면만 무시한다면 나도 들고 있는 짐 보따리를 팽개치고 그곳에 앉고 싶었다.

 

  그런데 앞에서 기사 양반이 무어라고 하는데 사람이 많아서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큰소리를 지르는데, 그제야 그곳에 앉아 있으면 뒷문이 열리지 않으니 일어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 어른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그냥 모른 체하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드디어 화가 난 기사가 볼멘소리로 호통을 치자, 옆에 있던 청년이 얼른 그 남자를 부축하여 일으키며 “어르신! 이곳에 앉아 계시면 문을 열수 없다니까 이쪽으로 올라오시지요.”라며 공손히 자기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었다.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노신사가 젊은 기사에게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으로 조마조마하게 보고 있다가, 그 청년의 예의바르고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도 그 청년을 찬찬히 뜯어보니 학생인 듯 앳된 모습에 용모도 수려한 것이 누구네 집 자식인지는 몰라도 참말로 잘 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어르신”이라는 호칭은 요즘 사람들은 잘 쓰지 않는 말이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기껏 젊은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말이라야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라던가 “아저씨! 문이 안 열리니 올라오시래요.”정도일 것이다. 공손하고 예의가 몸에 밴 사람이라면 당연히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나올 테지만 요즘 젊은 사람에게는 듣기 어려운 호칭이기 때문이다.

 

  나도 한동안 경로 대학에서 수필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물론 말솜씨 없는 사람이 두 시간동안 강의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처음에는 그분들에게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었다. 물론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있긴 하지만 좀 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말은 없을까 고민도 했다. 어느 때는 모두 부모 같은 연배의 분들이라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정작 어법(語法)에 맞는 말인지는 확실치가 않았다.

 

  내가 아는 어느 분은 친구의 부인이나 안면이 있는 동네 부인들에게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기분도 나쁘고 듣기가 거북하여 무슨 그런 호칭을 쓰느냐고 핀잔을 주었더니, 그 분은 “아주머니”라는 호칭이 얼마나 예의바르고 정감 있는 호칭인데 그러느냐고 친척간의 호칭까지 들먹이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요즘 직업은 여하 간에 아무한테나 부르는 호칭이 사장님이나 사모님이고, 어지간하면 아무개 여사라던가 선생님이다. 이런 “호칭 인프레이션”시대에 살다보니 “아주머니”라는 순수한 우리말 호칭도 어느 때는 상대방을 낮춰 부르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다.

 

  더구나 요즘 사회에서는 ‘아줌마’라는 호칭이 슬프게도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게 되고 미디어를 통해 부정적인 이미지로 평가절하 되다보니 나같이 평범한 주부들도 아줌마라는 호칭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줌마’하고 ‘아주머니’하고는 부르는 어감부터 다르다. 예전부터 아주머니는 집안의 형수뻘이나 손위 사람에게 부르던 호칭이었다.

어찌 보면 호칭도 시대적 조류나 유행에 민감한 것 같다. 부부의 호칭도 ‘여보나 당신’에서 언젠가는 ‘아빠’라던가 ‘자기’라는 애매모호한 호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모두 근친상간(近親相姦)을 하고 사는 것 아니냐.”라는 어느 어른의 불호령처럼 ‘오빠’라는 뜬금없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대중화 되었다.

 

  그렇다고 요즘 젊은이들에게 도덕군자처럼 설득력도 없는 호칭에 대하여 시비를 가리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예의 바르고 반듯한 청년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누군지는 몰라도 그 부모 되는 분들께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정작 내 아이들은 저런 경우에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하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남을 존중해주고 인격적으로 대해줄때, 상대방도 나를 존중해주고 인정해준다는 것을 가끔 잊어버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막말을 하고 상대방을 비하하는 발언도 서슴치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오늘도 만일 청년이 용기 있게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 초로의 신사는 예의도 모르는 경우 없는 노인네로 몰려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그래서 차는 밀려서 짜증이 나고 비 때문에 후덥지근한 차안의 분위기를 더욱 가라앉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의 반듯하고 예의바른 행동으로 인하여 노인이 젊은 사람에게 공경 받는 아름다운 모습을 본 것이다.

 

  더불어 상쾌해진 기분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버스가 목적지까지 와버렸다. 물론 이런 감동은 나뿐만 아니라 오늘 버스에 탔던 모든 사람이 비슷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의 예의바른 말과 작은 친절이 여러 사람들의 오늘 하루를 즐겁게 해줄 것이다.

 

                                                                                              200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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