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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강이 있는 그림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7. 13.

강이 있는 그림

한 향 순

 

   우리 집 식탁에 앉으면 마주 보이는 곳에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집안일을 끝내고 커피라도 마시면서 습관처럼 바라보는 그림은 언제나 친근한 고향을 대할 때처럼 잔잔한 기쁨을 안겨 준다. 지금은 한강대교로 불리고 있지만, 전에는 제일 한강교로 불리던 철재(鐵材)다리와 시원한 강이 보이는 그림이다.

 

   다리는 부채꼴의 난간을 떠받치며 가로질러 놓여 있고 밑에는 짙푸른 한강 물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으며, 다리를 건너면 지금은 없어져버린 평평한 지반의 돌출부분이 보인다. 강 건너로는 아파트촌을 뒤로하고 남산이 커다란 숲을 이루면서 버티고 있고, 남산 타워가 하늘을 찌를 듯이 수직으로 서 있는 삼십 호쯤 되는 유화이다.

 

  지금부터 십 오륙 년 전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알뜰하게 살던 시절이었다. 느닷없이 퇴근길에 커다란 그림을 사가지고 온 남편의 행동이 별로 달갑지가 않았다. 미술 공부를 하는 학생이 생활비가 쪼들린다며 그림을 들고 남편의 사무실로 찾아 왔다고 한다. 그림에 별로 안목이 없는 남편이지만 그 학생의 사정이 측은하여, 그때의 우리의 처지로는 꽤나 비싼 값을 치르고 사온 것이었다.

 

  그때는 집에 커다란 그림을 걸어 놓을만한 마땅한 공간도 없었고 그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어서 그랬는지,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 처음 올 때는 낯설고 삭막하던 서울이 지금은 오히려 고향처럼 푸근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지금은 이 그림이 어느 것보다도 정겹게 느껴진다.

 

  그림을 바라보노라면 무엇이나 감싸 안으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어느 날은 울부짖듯 몸살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마치 안개가 낀 듯 선명하지 못한 남산의 무성한 나무들도 기분에 따라서는 공해에 찌들려 죽어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하나의 그림을 보면서도 그때마다 감정과 시각에 따라 그림은 살아서 춤을 추기도 했고 모든 것이 정지된 채 잠자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림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그림을 보고 작가의 의도나 내면세계를 파악할 수 없으나, 기쁘고 행복하기보다는 깊은 고뇌가 따르지 않고서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몇 해 전에 강을 바라보며 며칠을 지새운 적이 있었다. 돌잡이 딸과 새댁 티가 가시지도 않은 아내를 남겨두고 시동생이 사고를 당했다는 비보를 듣고 강변에 달려왔을 때, 강은 지금까지 보아온 유순하고 낭만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전에 보아오던 강은 파도가 있는 바다와는 달리 언제나 잔잔한 평화로움의 상징 같았다.

 

  하천이나 개울에서 흘러나오는 오물을 가라앉히고 고요하게 흘러가는 강물은 그 모든 걸 안으로만 삭이며 놀라운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결코 쉬거나 역류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삶의 순리를 배우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노을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이 황홀하게 물드는 저녁시간이나 꽃이 만발한 고수 부지에서 유람선이 떠있는 모습을 보면, 서울시민 모두가 천혜(天惠)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동생의 익사체를 찾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가까이 다가가본 강은 결코 평화롭거나 아름답지 않았다. 장마가 걷힌 후인지 물살은 거칠고 빨랐으며, 쓰레기투성이의 흙탕물은 멀리서 본 것처럼 푸르고 깨끗하지 않았다. 더구나 어둠에 휩싸여서 번쩍거리는 강의 모습은 마치 먹이를 삼키고 난 짐승의 음흉한 눈빛 같았다. 그 후 그림 속에서 교각 밑으로 짙은 음영을 나타낸 암청색의 강은 그 밤에 본 짐승의 눈빛 같기도 하고, 파스텔 톤으로 처리된 햇빛 쪽의 수면은 예전의 평화스런 강의 모습이었다.

 

  살아오면서 그림이 번거롭게 여겨진 적도 있었고, 시류(時流)에 따라 그림을 광속에 버려둔 적도 있었다. 지금은 멀리 외국에서 가져온 풍경화도 있고 꽤나 인정받는 유명한 화가의 그림도 몇 점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ki soo”라고 쓴 화가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혹시 생활고에 시달려 그림을 포기하고 좌절된 꿈을 한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는 이제는 재능을 인정받아 명성을 얻었지만 고통의 부피가 줄어든 만큼 예술혼이 식은 것은 아닐까. 강이 보이는 그림은 처절한 죽음이 있었던 그날을 생각나게 하고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아픔을 되새기게 하지만, 내가 살아온 날들이 아름답고 밝은 색채만이 아니듯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깨우쳐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는 정이 많이 들어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한 기쁨과 위안을 주는 그림이 되었다.

 

 

                                                                                                                199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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