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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무를 뽑으며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7. 13.

무우를 뽑으며....

한 향순

 

  짧아진 가을볕이 아쉬워 해가 기울기전에 부지런히 무를 뽑는다. 그리고 어머니와 밭고랑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총각무와 순무를 다듬는다. 밭에서 갓 뽑아낸 무를 다듬다가 맛있어 보이는 것은 껍질을 벗겨 어머니께 잘라 드리기도 하고,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무맛이 싱싱한 과일처럼 맛있다.

 

  특히 시댁인 김포지방의 특산물 순무는 매운맛이 덜하고 단맛이 많아서 그냥 먹기에도 좋은 편이다. 언뜻 보기에는 배추꼬랑지 같이 생겼는데 모양은 역삼각형이며 잎은 김치 할 때 쓰이는 갓 비슷하게 생겼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순무 김치를 먹어서인지 어느 김치보다도 이것을 좋아한다. 보통 김장을 하기 전 입동쯤에 총각김치처럼 담그는데 양념도 특별히 다른 것은 없고, 대신 소금에 잠깐 절여야 순무 맛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어머니는 분가한 자식들을 주기 위해서 칠순이 넘은 연세에도 많지는 않지만 고루고루 밭농사를 지으신다. 그것도 집에서 2킬로 넘게 떨어진 옛 동네를 버스를 타거나 아버님이 운전하는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밭에 다니신다. 내가 결혼을 하여 처음 이곳에 왔던 이십 년 전에는 아주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 시댁은 그저 모든 게 어렵고 힘들기만 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는 것도 그렇고 우물에서 두레박질을 하여 설거지를 하는 일등은 아무리 배우려고 노력을 해도 잘되지 않았다. 그 당시 공무원이셨던 아버님은 농사일에는 관여하지 않고 그 많은 일을 어머니 혼자 감당하셨다. 물론 일꾼을 사거나 머슴을 쓰기도 했지만 밭농사는 거의 어머니 몫이었다.

 

  옛날 시골 어른들이 거의 그렇게 사셨지만 특히 어머니는 동네에서도 치마폭에 바람소리가 날 정도로 부지런하다고 소문이 난분이었다. 아들 둘을 결혼시켜 며느리를 보았지만 둘 다 도시생활을 하며 분가를 하였기 때문에 어머니의 일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많아 졌다. 따로 살기는 해도 나는 도시에서 편하게 살고 늙으신 어머님은 고생하시는 것 같아 늘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농번기라든가 바쁜 일이 있을 때는 자주 나를 부르셨는데 가뜩이나 익숙지 않은 시골일과 덩치만 컸지 야물지 못한 일솜씨 때문에 늘 일만 저지른다고 꾸중만 들었다.

 

  또한 큰동서는 몸도 약하고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주로 나를 부른 것이었는데 항상 어머니가 하시는 일 분량에 비하면 반에 반도 안 되었다. 모내기철이나 추수철이면, 새참이나 점심을 해서 머리에 이고 들고 논으로 나가는데 생전 처음 해보는 임질은 못하겠다고 하지도 못하고 휘청휘청 앞 만보고 걷다가 보면 등허리에 흥건히 땀이 고이기 일쑤였다.

 

  어쩌다 부모님을 뵈러 시댁에 가면 어머니는 늘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해가 질 무렵까지 일을 할 만큼 어머니는 일 욕심이 많으셨던 것 같다. 논농사 말고도 인삼농사를 오래 하셨는데 그 일꾼들 식사 뒷바라지는 정말 힘들었다. 철이 없던 젊은 시절에는 둘째인 나만 불러 일을 시키고 칭찬은커녕 늘 나무라기만 하는 어머니가 어렵고 무섭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일을 시키기 위해서보다는 동네 사람이나 친척들에게 며느리가 와서 일을 돕는 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만큼 어머니는 자존심도 강하고 사리가 분명한 분이신 이라는 것을 이십년이 지난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다행이 셋째 시동생이 농사일을 하며 시골에서 살겠다고 하여 부모님이나 우리도 편안한 마음으로 몇 년을 보냈다. 그러나 시골에서 평생 살겠다며 결혼한 셋째 동서가 얼마 지나지 않아 분가를 원 했을 때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그때는 어머니도 많이 늙으셨고 도저히 농사일을 감당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가족회의 끝에 집은 읍내 가까운 곳에 새로 지어 옮기고 농사는 전부 남에게 맡기기로 했다. 끝까지 반대하던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비탄과 한숨에 젖어 우울한 나날을 보내시곤 했다. 하기는 농촌에서 태어나 가난한 공무원이었던 아버님에게 시집와서 갖은 고생과 보람 끝에 일군 전답과, 정든 동네를 떠나 도시 같은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어머니에게는 삶의 의욕마저도 잃게 하는 일인지 몰랐다.

 

  우리가 가끔 뵈러가서 “어머니 그래도 힘든 일 안 하니까 편하고 좋으시죠?” 하고 물으면 “이게 어디 맥 놓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지” 하고 허탈해 하셨다. 그 이듬해부터는 남에게 맡겼던 텃밭을 도로 찾아 밭농사를 다시 시작하였다. 때맞추어 고추, 마늘, 호박이나 양념들을 보내주셔서 따로 장만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야 철이 드는지 젊었을 땐 아이를 업고 버스를 갈아타며 시골에 가면 어머니가 꾸려주던 보따리들이 하나도 반갑지가 않았었다. 식구도 적고 잘 먹지도 않는 푸성귀를 뭐 하러 힘들게 싸주시나 하고 마지못해 들고 오곤 했다. 이제는 아프신 무릎을 주무르면서도 밭일을 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렇게 어머니하고 단둘이 마주앉아 오랫동안 이야기를 한 것이 얼마 만인가.

 

  이제 손바닥 만 한 해가 막 넘어가고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황량하고 쓸쓸하기까지 하다. 곧 서리 내리고 입동이 지나면 계절은 겨울로 들어설 것이다. 모두 다듬은 채소들을 자루에 담기 위해 돌아서서 일하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역광 속에 하나의 실루엣으로 비쳐진다. 워낙 작은 체구의 어머니지만 오늘은 유난히 작고 좁은 어깨가 왈칵 달려가 감싸 안고 싶을 만큼 가슴에 와 닿는다.

 

  근래 몇 년 사이 지식들을 둘이나 앞세우고 막내 시동생마저 와병중인 요즘, 어머니를 버틸 수 있게 하는 힘, 바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199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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