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가 차도를 유유히 돌아다니는 모습>
오늘은 네팔의 국경을 넘어 인도로 가는 날이다. 며칠만에 느즈막히 일어나 여유있는 아침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나는 날씨이니 오늘도 더위가 심상치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버스안은 냉방이 지나치게 잘 되어 꼭 감기 걸리기에 알맞은 환경이다.
우리는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인도 국경에서 한시간 정도 기다리다 입국을 하여 고락푸르시로 향했다.
< 포장마차 같은곳에 작은 봉지를 매달아서 팔고 있었는데 씹어먹는 담배 비슷한 것으로 담배대용으로 쓰이는 기호품이란다.>
네팔도 마찬가지였지만 접경지대에 늘어서 있는 인도의 빈민가를 지나면서 많은것을 생각하게 했다.
인도는 옛날부터 카스트제도라는 신분제도의 관습이 아직 남아있어 여러계층의 사람들이 정말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고 있었다.
빈곤층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동물보다도 못한 환경속에서 살고 있으며 이 나라의 소나 개, 염소등은 자유로이 방목되어 아무
제약없이 대로를 활보하고 다녔다. 그래도 그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나 환경을 비관하지않고 이승에서 좋은 업을 쌓아 다음 생애는
귀한 인연으로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러기에 그들의 행복지수는 우리보다 훨씬 높다고 하지 않던가.
드디어 고락푸르시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나자 오후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어 시내와 재래시장을 자유롭게 둘러보기로 했다.
우리는 우선 호텔 인근에 있는 백화점이라는 곳을 둘러보았는데, 그저 우리나라 조그만 슈퍼마켓정도의 규모였다.
다시 발길을 돌려 재래시장은 어떤가하고 둘러보니, 거리 환경이 네팔과 비슷하게 복잡하고 더럽고 지저분한것이 말이 아니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5,60년대를 연상하게 만드는 풍경에 소와 자전거와 오토바이, 차가 한데 엉켜 크락션소리만 귀청이 찢어지게
시끄러웠다.
잠시 어리버리하다가는 꼭 어디에 치일것만 같은 위기감에 다 둘러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리며 정말 우리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망고 몇개와 치즈등 간식거리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릭샤와 오토바이 그리고 차와 사람, 거기다 소나 개등의 동물까지 한데 엉켜서 도로는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아래는 우리의 옛날 농촌에서 보던 키질을 하여 돌을 골라내고 있는 아주머니
그럭 저럭 고락푸르에서 하루밤을 묵고 드디어 성스러운 도시 바라나시로 향했다.
인도 중부에 위치한 고대도시 바라나시에는 갠지스 강이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데, 일년 내내 수많은 순례자로 붐빈다.
왜냐하면 갠지스 강에서 몸을 씻으면 자신의 모든 허물이 다 정화되고, 화장한 재를 그 곳에 뿌리면 극락왕생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어식 발음으로 갠지스 강이라고 부르지만 인도인들은 이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 지역 발음으로 ‘강가’라고 불러야 좋아하며, 인도인들은 그 강을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아주 신성시한다.
우리는 바라나시에 도착하여 사르나트를 찾았다. 사르나트는 우리말로 녹야원이라고도 하는데 석가모니가 보리수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같이 수행하던 5명의 형제들과 처음으로 불법을 설파했던 불교4대 성지 중의 하나이다.
그곳에는 디메크 수투파라는 불탑과 큰 수도원이 있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도 함께 있었다.
이곳에도 각지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와 향을 사르고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간간이 볼수 있었다.
녹야원의 보리수나무는 맨처음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네킹으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5명의 형제들에게 설법을 전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아름드리 커다란 보리수 나무와 한글로도 적혀있는 불교경전
'해외 여행기 > 인도 네팔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갠지스강의 일출 (0) | 2010.04.29 |
---|---|
성스러운 바라나시의 밤 (0) | 2010.04.27 |
석가모니 탄생지 룸비니 (0) | 2010.04.23 |
히말라야의 관문 포카라 (0) | 2010.04.21 |
네팔의 사람들 (0) | 2010.04.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