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도 미덕이다.
한 향 순
장롱 속에 오래 보관해온 의류 함을 열었다. 그 상자 안에는 십 여 년 전에 고이 접었던 꿈과 추억의 물건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선과 색이 멋스러운 한복과 버선과 부채 등은 물론 한량무를 출 때 입던 남자용 도포와 갓까지 고스란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억의 물건들은 어느새 춤을 추던 때로 돌아가서 그 시절을 되새김질 하고 있었다.
예기치 않게 오래 살던 서울을 떠나 용인의 낯선 동네로 이사를 와서 마음을 붙일 친구도 취미도 없이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한국무용을 가르치던 친구의 권유로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난생 처음 해보는 한국무용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낯설고 어색했다.
이미 굳어버린 관절과 뻣뻣해진 몸으로 춤을 시작했으니 그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춤보다는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선생님을 따라하였다.
한국무용은 발레나 현대무용과 달리 내적인 춤이다. 현대무용이 동작이 강하다면 한국무용은 절제와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곡선으로 된 동작이 많고 호흡 또한 둥글게 한다.
처음에는 운동을 한다는 마음으로 동네 주민 센터에서 가볍게 시작했지만 점점 그 가락과 우리 춤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가락 속에는 한(恨)이 녹아있고 희,노,애,락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춤을 배우다보니 좀 더 잘 추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일주일에 한두 번 가지고는 도통 실력이 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가 운영하는 서울의 무용연구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초보자는 아니고 어느 단체에서 무용을 가르치거나
좀 더 수련을 하려고 오는 춤의 고수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보다 실력이 한참 모자라지만 원장인 친구 덕분으로 그들 틈에 끼어 춤을 배우고 더러 같이 공연도 다니게 되었다.
우리 가락 속에 몰입이 되어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며 춤을 추다보면 온갖 걱정과 시름을 잊고 무아지경에 빠지는 듯하였다.
태평무를 익히고 나면 살풀이를 그 다음은 한량무를 하나씩 익히며 슬픔도 더러는 잊게 되고 고통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십년 가까이 춤에 빠져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무릎이 퉁퉁 붓고 아프기 시작했다.
무리를 했나싶어 조금 쉬면 낫겠지 여겼는데, 낫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졌다.
깜짝 놀라서 병원으로 한의원으로 뛰어 다니며 들은 진단은 무릎에 염증이 생겨 물이 고였다는 것이다.
주사기로 물을 빼내도 하루 이틀만 지나면 다시 부어올랐다.
그때부터 다리에 힘을 주어 굴신을 많이 하는 우리 춤은 포기하고 걷는 것도 줄이며 염증을 가라앉혀야 했다.
한참 후, 치료가 된 후에도 춤은 엄두도 못 내고 무릎 건강에는 물에서 운동하는 것이 좋다고 하여 수영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지난 연말, 어느 문학단체의 송년모임에서 어느 문우가 분위기를 띠우기 위해서 한국무용을 선보였다.
제대로 된 무대가 아니니 간단한 의상과 약식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데
몸매도 예쁘고 어찌나 춤사위가 고운지 나는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나도 저렇게 춤을 추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뭘 하고 있지?”
갑자기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들이 살아나며 온몸의 세포들이 예전의 기억을 찾아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며칠 뒤, 중요한 용무를 잊고 있던 사람처럼 우리 춤을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자
앞 뒤 생각도 없이 문화센터에 덜컥 등록을 했다.
그리고 장롱 속에 보관했던 의류 함을 꺼내 본 것이다.
그 시절에 입었던 옷들은 주인을 잃은 십년 동안 마법처럼 쪼그라들었다.
아니 옷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주인의 몸이 불어나서 모두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오래 전에 문단의 어느 선배님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좋아하던 것을 하니 씩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젊을 때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는데 내가 나이를 먹고 보니 그 말이 새삼 실감나게 다가왔다.
선배님은 아프면서 좋아하던 것 대부분을 포기했고, 포기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하셨다.
그동안 사는데 치어서 보이지 않던 작은 풀꽃과 고마웠던 사람들이 생각나더라고 하셨다.
하지만 포기하는 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 여태까지 공들여 해왔던 것들이 아쉽기도 하고,
주변의 시선들이 있어서 쉽게 포기하기도 힘들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포기에 대한 글도 생각난다. “인생을 잘 살려면 빠르게 포기할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독사에게 팔을 물리면 서슴없이 팔을 잘라야 합니다. 자기 팔이라고 애지중지 하다가는 목숨마저 잃게 됩니다.
포기할 건 포기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습니다.”
내가 하려던 것은 그리 거창한 것도 의미 있는 일도 아니지만 이 나이에 거구를 이끌고
무리하게 춤을 추다가 무릎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어쩐단 말인가.
등록금 아까워하지 말고 포기도 미덕이라는 것을 실천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자꾸 서글퍼진다.
2019년 <에세이문학>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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