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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탐매여행

by 아네모네(한향순) 2020. 3. 21.



탐매 여행

 

                                                                                                                                      한 향 순

 

올 겨울은 큰 추위 없이 넘어 가려나 싶더니 늦추위가 남아 다가오는 봄을 시샘한다.

그래도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가까이 오면 땅속에도 생명이 움트는 봄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마른가지에는 수액이 조금씩 흐르고 겨우내 수북이 쌓였던 낙엽더미에도 촉촉하게 물기가 스며든다.

아직은 찬바람도 그대로이고 거리풍경도 황량하기만 한데,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이 봄이 턱 밑에 왔음을 알려준다.


벌써 남녘에는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소식이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매화는 계절을 시기하지 않고 봄을 준비하였다.

봉긋하게 망울진 매화를 보면 매서운 추위 속에서 마른 가지 어디에다 꽃망울을 잉태했는지 참으로 대견하고 신비롭다.

매화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린다고 하여 춘고초(春告草)라고도 불렀는데,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은은한 향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한겨울의 추위와 눈보라를 받아들이고 피워낸 매화 한 송이. 선비들은 이 꽃을 보며 세속의 시련에 좌절하지 않고,

숱한 유혹에 미혹되지 않으며, 성취감에 들떠 방일하지 않겠다던 자신의 각오를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매화를 사랑하고 칭송하며 매화는 아무리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선비들은 절개를 뜻하는 시를 읊었는지 모른다.

이른 봄이 되면 매화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매화 향에 취하곤 한다.

남쪽 김해에 가면 와룡매(臥龍梅)가 있는데,

백년이 넘은 굵은 가지는 휘어지고 비틀어져서 묘한 울림을 준다.

그 오래된 고목에 하얀 점을 찍듯이 꽃이 피고 여린 꽃잎을 파르르 떨 때는

행여 비바람이 시샘이라도 할까 싶어 노심초사한다.


    



                                           주로 2~3월에 꽃이 피는 매화는 꽃 색깔이 흰 백매와 붉은색인 홍매로 나뉘며,

또한 꽃잎이 낱장으로 된 꽃과 여러 겹 있는 꽃으로 나눠진다.

 춘삼월이 되면 매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통도사 불이문의 백매와

영각 앞의 홍매는 꽃송이가 예쁘고 맵시가 빼어나다.

해묵은 사찰의 고풍스런 모습과 어우러진 매화는 한 폭의 그림이다.



또한 화엄사의 흑매도 빼놓을 수 없다. 전남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에

족히 300여년은 넘어 보이는 매화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고고하고 우아한 자태의 홍매화는 붉게 타오르다 지쳐버린 검붉은 색이어서 흑매라고 부른다.

천왕봉을 바라보며 수백년 자리를 지켜온 흑매의 자태가 자못 늠름하다.




경남 광양에는 동네마다 야매(野梅)인 매실나무를 심어 봄이 되면 온산을 하얗게 뒤덮는다.

마치 눈이 온 것처럼 하얀 매화나무 사이로 소풍 나온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는 것도 힘든 시련을 이겨 낸 자의 기쁨이다.

매화 또한 아픔을 감내하지 않고 어찌 꽃을 피울 수 있겠으며, 혹독한 긴 겨울을 이겨내지 않고 어찌 봄이 오겠는가.

팍팍했던 우리의 삶도 어느덧 긴 겨울 지나고, 서둘러 매화가 피어나는 봄을 마중해야겠다.

 



                                                                                            2020년 3,4월호 <그린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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