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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자작나무 숲

by 아네모네(한향순) 2020. 5. 19.




자작나무 숲

 

                                                                                                                                   한 향 순

 

성급하게 꽃망울을 터트린 봄꽃들이 하나 둘 꽃잎을 떨구면,

꽃이 진 자리에서 연둣빛 잎사귀가 고물고물 삐져나오는 신록의 계절이 온다.

몇 달 동안 모든 것을 단절시킨 바이러스의 두려움에서 숨을 죽이고 칩거하던 사람들은

숨통이라도 트이고 싶어 호젓한 산길이나 숲을 찾아 나설 것이다.

 

온 세상이 녹색의 계절이 오면 어느 숲인들 천국이 아닐까마는,

특히 인제에 있는 자작나무 숲으로 달려가고 싶다.

명품 숲으로 명명한 인제의 자작나무 숲은 언제가도 좋지만 쭉쭉 뻗은 하얀 수피(樹皮)에 연

초록 잎사귀가 하늘거리는 오월의 자작나무 숲속은 그대로 자연의 보루이자 축복이다.





입구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언덕을 오르고 나서, 빼곡하게 자란 자작나무 숲속에 들어가면

시끄러운 세상과는 격리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혹한의 겨울을 하얀 껍질 하나로 버틴 나무는 너무도 의연하다.

줄기는 종이처럼 얇은 껍질이 겹겹이 쌓여 있는데,

마치 하얀 가루가 묻어날 것만 같다.


자작나무는 지혜롭게도 보온을 위하여 껍질을 겹겹으로 만들고 풍부한 기름 성분까지 지니고 있다.

옛날에는 이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사용했다고 한다.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하는데, 그 화촉이 자작나무 껍질이라고 한다.

또한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는 그림을 그리는 종이로도 쓰였다고 한다.




칠년 전 하얀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던 날, 처음 가본 원대리는 천상의 설국이었다.

겨울의 숲은 색과 치장이 사라지고 순수한 민낯을 보여준다.

하얀 수피를 입고 하늘높이 쭉쭉 뻗은 자작나무들은 파란 하늘과 어울려

신비스럽게 아름다웠고 우리는 아이들처럼 눈밭을 딩굴었다.



오월 자작나무 숲에 들어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곧게 뻗은 하얀 줄기와

여린 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하늘을 반쯤 가리고 있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가 푹신한 낙엽더미위에 누워 하늘을 보면,

쭉쭉 뻗은 하얀 줄기와 연초록 잎새가 바람에 살랑거리며 하늘을 반쯤 가리고 있다.


그 속에서 반나절 쯤, 온몸에 녹색이 물들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옹졸했던 마음은 너그러워지고 숲에서 다시 삶의 활력을 얻어 일상으로 돌아오곤 한다.

 




                                                                                                2020년 5,6월호 <그린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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