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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꽃사슴과 자연이 교감하는 섬

by 아네모네(한향순) 2020. 7. 15.

 

꽃사슴과 자연이 교감하는 섬

                                                                                               한 향 순

 

머리 위의 태양이 이글거리며 달아오르는 계절이 되면 시원한 바다가 한없이 그리워진다.

요즘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한적한 곳을 가고 싶을 때면 몇 년 전에 다녀온 섬,

굴업도를 떠올리게 된다. 굴업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라 불리기도 하고 백패킹의 성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아직도 때 묻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섬을 찾아가는 길 조차 멀고 불편하다. 당일로 다녀올 수는 없고

인천 연안부두에 가서 덕적도에 가는 배를 타고 1시간 남짓 간 다음,

덕적도에서 굴업도행을 기다렸다가 다시 배를 갈아타고 한 시간 넘게 가야 목적지에 도착 할 수 있다.

 

 

굴업도에는 조그만 마을에 열 가구정도 살고 있는데 교통편이라야 마을 이장님이 운영하는 트럭이 고작이다.

그것도 미리 민박예약을 해야 마중을 나오시는데 트럭 짐칸에 짐과 사람을 함께 싣고

마을에 도착하면 옹기종기 붙어있는 조그만 집들이 보인다.

우리는 민박집에 짐을 풀고 주인아주머니가 차려주신 아주 소박한 점심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굴업도(掘業島)”라는 섬의 이름은 사람이 엎드려 일하는 모습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마을 너머에는 하얀 백사장이 둥글게 펼쳐진 큰말 해변이 자리한다.

해변의 서쪽에는 레저 단지 개발을 위해 설치한 펜스가 있는데, 열려 있는 철문을 지나면 곧 가파른 산길에 접어든다.

그렇게 십여 분쯤 숨을 헉헉대며 산을 오르자 탁 트인 초원이 펼쳐진다.

 

 

바로 개머리 언덕이다. 백패커들 사이에서 성지로 꼽힐 만큼 유명하고 그토록 와보고 싶던 곳이다.

능선에는 강한 바람 때문인지 큰 나무는 없고 억새와 수크렁 군락이 바람에 펄럭인다.

언덕은 가장 높은 고지가 백여 미터에 불과한데, 섬과 바다를 경계로 가파른 해식 절벽이

둘러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특히 왼편 멀리 망망대해에는 선단여 삼형제 바위가

이정표처럼 길을 걷는 내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산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능선을 넘다보면 탁 트인 언덕에 수십 여 마리의 꽃사슴을 만날 수 있다.

오래 전에 탈출한 사슴 몇 마리가 지금은 백여 마리로 늘어 온 섬을 자기 놀이터처럼 헤집고 다닌다.

사람을 만나면 슬픈 눈망울로 빤히 바라보다가 해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서면 먹는 것에 열중한다.

그만큼 사람에게 오염되지 않은 천혜의 풍경이다.

 

굴업도는 1920년 까지만 해도 천 여 척이 넘는 배가 모여드는 민어 파시가 열렸던 곳이다.

선원과 상인들이 이천 명씩 북적였고 그들의 두둑한 주머니를 노리는 술집도 번성하였다고 한다.

19238월에 큰 태풍이 몰려와 1,100여 명이 피해를 입었고 동섬마을의

민어 어획량이 줄면서 서서히 맥이 끊어졌다고 한다.

 

 

이튿날 이른 새벽에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민박집을 나섰다.

굴업도는 두 개의 섬이 모래톱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사이에 목기미 해수욕장과 두 개의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있다.

 

붉은 모래해변에는 한창때 세워진 전봇대와 끊어진 전깃줄들이 한때의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지금은 몇몇 주민들만 남아서 마을을 지키는 이 조그만 섬에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말을 다시 곱씹게 된다.

 

 

 

                                                        2020년 7,8월호 <그린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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