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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메밀꽃 필무렵

by 아네모네(한향순) 2020. 9. 16.

 

메밀꽃 필 무렵

                

                                                                                                      한 향 순

 

수그러들 것 같지 않던 더위가 물러나고 조석으로 선뜻한 바람이 부는 9월이 오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이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막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소설의 한 대목처럼 그곳에 가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십여 년 전,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는 상징적으로 만들어 놓은 물레방앗간에서

기막힌 인연을 만날 것도 같았고 봉평장에서도 아는 얼굴을 볼 것도 같았다.

 

 

그만큼 소설 속의 이야기가 팩트가 되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그 시절만 해도 감성이 풍부하여 이효석의 체취가 배어있을 것 같은 생가와

메밀꽃이 있는 봉평은 나를 흠뻑 매료시켰다.

더구나 소설의 한 대목처럼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은 달밤의 메밀밭의

절경을 보려고 숨죽여 어둠을 기다리곤 하였다.

나귀에 짐을 싣고 다음 장터로 떠나는데, 마침 그들이 가는 길가에는 달빛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달빛 아래 펼쳐지는 메밀꽃의 정경에 감정이 동했음인지 허생원은 조선달에게 몇 번이나 들려준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일생에 단 한번 맺은 사랑과 인연이 기막힌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코로나19로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요즘,

문득 어딘가 떠나고 싶을 때 권하고 싶은 곳이 봉평이다.

그때쯤이면 흐드러지게 핀 하얀 메밀꽃을 보면서 이효석 문학관에 들려, 그의 문향을 다시 음미하고

친구와 메밀 전에 막걸리라도 한잔 한다면 소박하지만 행복한 나들이가 될 것이다.

또한 시간이 허락하면 근처에 있는 허브나라농원과 무이예술관을 들려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다.

 

 

오래 전에 버려진 폐교에 세 명의 예술가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예술관에서는

메밀꽃을 배경으로 그린 수십 점의 회화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운동장 곳곳에 조화롭게 펼쳐진 조각품들과 아기자기한 공간들은 시 한수가 저절로 나올 만큼 정겹고,

교실을 개조해 만든 전시실에는 도자기와 서예 작품 등 예술의 향기를 듬뿍 느끼게 한다.

 

 

요즈음에는 그 안에 예쁜 카페가 생겨서 풍광 좋은 조용한 예술관에서

차를 마시며 자연을 맘껏 즐길 수 있다. 더구나 울타리를 넘어 끝없이 펼쳐지는

메밀밭이 한눈에 보여서 멋진 인생샷을 촬영하기에도 그만이다.

무더위가 휩쓸고 간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자신을 차분히 돌아 볼 수 있는 계절.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생각하며 자신에게 침잠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나름 괜찮은 계획이다.

 

 

2020년 9,10월호<그린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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