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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슬픈 역사를 간직한 다리

by 아네모네(한향순) 2020. 11. 29.

 

슬픈 역사를 간직한 다리

       

인도양의 진주로 불리는 스리랑카의 엘라 지역을 여행하면서 궁금했던

<나인아치 브릿지>라는 다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곳은 엘라에서 40분정도 걸어가야 볼 수 있는데,

다리는 평범한 관광지로만 기억하기에는 아쉬운 스리랑카 식민지 시절의 아픈 역사가 숨어있었다.

다리의 역사를 듣고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게 된 것은 우리도 비슷한 식민지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리랑카는 오랫동안 다른 나라에 지배를 받으며 힘들게 살았던 싱할리족의 나라이다.

이 나라는 1505년 포르투갈 인들이 갈레지역 일부를 점령하면서 서양의 침탈이 시작되었다.

그 후, 1602년에 네덜란드인이 처 들어와서 포르투갈을 몰아냈고

다시 1795년 영국이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실론왕국을 멸망시켰다.

결국 스리랑카는 1948년에 영국으로부터 자치령 실론(Ceylon)으로

독립 할 때까지 5백년 가까이 식민지 시대를 보냈다.

 

 

                   그 시대에 서양인들은 정복한 땅에 플랜테이션으로 불리는 서양식 대농장을 만들었다.

현지인의 많은 노동력과 강제로 빼앗은 토지를 활용하여 대량의 농작물을 생산하여 수탈하였다.

1830년 즈음에 스리랑카에 대규모 커피농장이 발달하자, 그들은 노동력이 모자라

인도 남부지역에서 살고 있던 타밀족 노동자를 많이 이주시켜 일을 시켰다.

그러나 1860년경에 퍼진 커피녹병으로 커피농장들이 하나 둘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그 즈음 스코틀랜드 출신 제임스 테일러가 어린 나이에 커피농장에서 일을 하려고 스리랑카에 건너왔다.

그는 커피녹병으로 커피 생산길이 막혀 일자리를 잃게 되자

인도로 가서 차 재배기술등을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스리랑카와 기후가 비슷한 인도 북동부 아쌈 지방에서 차나무를 가져와

처음으로 스리랑카에 차 밭을 가꾸게 된다. 그의 차밭은 대 성공을 거두며

불과 20년 후에는 이만여 톤의 차를 영국에 수출하였고 주변 사람들에게

차 재배 기술을 보급하여 스리랑카의 차 산업을 일으켰다.

그는 영국이 차를 마시는 나라가 된 것은 커피녹병 덕분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스리랑카 차나무의 특징은 습도가 높고 선선한 지대에서 좋은 차를 생산하여

대부분 차밭이 해발 1,000~1,600m 사이 산악지대 계곡을 따라 발달해 있다.

그러다 보니 생산된 차를 운반하기 위하여 골짜기와 골짜기를 연결하는 기차는 필요불가분의 관계였고

푸른 차밭 사이를 오가는 기차에서는 관광열차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었다.

 

 

나인아치 브릿지는 엘라와 도모도라 기차역 사이 해발 약 천 미터 계곡에 자리 잡은 다리로

높이 24m,  7m, 길이 91m의 규모인데 특이한 것은 무게를 받혀주는 철근이 하나도 안 들어가고

오로지 시멘트와 돌로 된 벽돌 등으로만 지어진 9폭짜리의 홍예문 다리이다.

원래 1913년 실론 영국철도국 부설계획에는 이 다리가 철교로 설계되었으나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다리를 지을 공사용 철근이 전쟁물자 공출로 부족해지자 공사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한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 철도국에서 엔지니어 보조로 근무하며

기술을 배우던 싱할리인 아프하미는 자신이 맡아서 다리 공사를 해보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는 불가능하다고 완강하게 거절하던 철도국을 설득하여 공사를 수주하고,

인근 주민들을 설득하여 철근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돌과 돌벽돌,

시멘트만을 사용하여 오랜 각고 끝에 1921년 다리를 완공시켰다.

완공 후, 영국인들이 안전성을 의심하자 스스로 첫 열차가 지나갈 때 다리 밑에 누워 있겠다고

제안하여 개통식을 무사히 마쳤다고 한다.

다행이 공사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다리가 완공되자 아프하미는 철도국으로부터

치하를 받으며 4카트 분량의 은화를 공사 대금으로 받았다. 그는 마을로 돌아와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과 이틀간 축하 잔치를 벌이고, 이 돈은 모두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 덕이라며

은화를 모두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여행길로 유명한 스리랑카의 나인아치 브릿지

아름다운 풍경 뿐 아니라 어려운 식민지시대 역사 속에 싱할리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준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다리이기도 하다.

이 다리에는 아직도 하루에 세 번 기차가 운행을 하는데 기적 소리를 내며 덜컹거리며

달리는 기차의 소음은 정겨움마저 느끼게 한다.

해외에서 이 다리를 보려고 찾아온 관광객들도 많지만, 수많은 스리랑카 학생들도

역사의 현장을 찾아 그 당시의 싱할리인들의 의지와 자존심을 배우려고 하고 있다.

어쩌면 식민지 시대의 아픈 역사를 다시 기억하며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난관을 극복하여

다리를 만들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을사람들과 공유하는 삶을 선택한 정신을 배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스리랑카를 여행하며 감동을 받은 것은 어딜 가나 너무도

순수하며 착한 스리랑카 사람들의 심성이었다.

 

 

 

                                                         2020년 11,12월호 <여행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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