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에 갇히다
한 향 순
희뿌연 해무가 섬을 삼켜버릴 듯 몰려오던 날
눈 빠지게 기다리던 배는 끝내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늠 할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토끼섬 해식동굴을 찾았다.
검붉은 동굴은 거대한 생명체를 마주한 외계행성처럼
태고의 지구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것 같았다.
파도와 염분 때문에 움푹 파인 동굴과
해식절벽이 터널처럼 길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앞을 가로 막는 해무 속으로 들어가면 모두가 혼자다.
빠져 나올 수 없는 올가미에 걸린 듯 두려움이 몰려온다.
곁에 있는 인연을 모두 격리시키는 막강한 해무처럼
언제쯤 병균이 잦아들고 환한 햇빛이 들지 모르겠다.
그저 안개가 걷힐 때까지 꿋꿋하게 버틸 뿐이다.
2022년 2월호 <좋은수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