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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삘기꽃 연가

by 아네모네(한향순) 2022. 5. 20.

 

삘기꽃 연가

 

                                                      한 향 순

 

화사한 봄꽃들이 지고 나면 가끔 삘기꽃을 만나러 갔었다.

이맘때면 광활한 들판을 솜털처럼 하얗게 뒤덮는 곳이 있다.

꽃이라기보다는 벼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삘기는

옛날 보릿고개를 넘을 때,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씹던 풀이다.

 

우음도(牛音島)는 원래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섬이었는데,

시화호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섬이 육지로 변한 곳이다.

그동안 이곳에는 공룡알 화석지도 생기고 전망대도 생겼지만

아직도 넓은 들판에는 나무들이 띄엄띄엄 서있고

억새와 삘기가 우거진 야생의 땅이기도 하다.

 

바람이 아무 거리낌 없이 나무를 흔들고

고라니가 억새와 잡초를 마구 헤집어 놓고 다녀도

흔적이 남지 않는 외로운 땅.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장엄한 일출도 보고

삘기꽃 속에서 추억을 곱씹다보면

답답하던 마음을 치유 할 수 있고

건조해진 몸에 생기를 주는 고마운 땅이기도 하다

그런 곳이 개발로 인해 이제는 추억의 땅이 될 것이다.

 

 

 

                                                    2022년 5월호 <좋은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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