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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해무에 갇히다

by 아네모네(한향순) 2022. 3. 14.

 

해무에 갇히다

 

                                                         한 향 순

 

희뿌연 해무가 섬을 삼켜버릴 듯 몰려오던 날

눈 빠지게 기다리던 배는 끝내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늠 할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토끼섬 해식동굴을 찾았다.

 

검붉은 동굴은 거대한 생명체를 마주한 외계행성처럼

태고의 지구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것 같았다.

파도와 염분 때문에 움푹 파인 동굴과

해식절벽이 터널처럼 길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앞을 가로 막는 해무 속으로 들어가면 모두가 혼자다.

빠져 나올 수 없는 올가미에 걸린 듯 두려움이 몰려온다.

곁에 있는 인연을 모두 격리시키는 막강한 해무처럼

언제쯤 병균이 잦아들고 환한 햇빛이 들지 모르겠다.

그저 안개가 걷힐 때까지 꿋꿋하게 버틸 뿐이다.

 

 

                                                      2022년 2월호 <좋은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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