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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한줄기 빛을 찾아서)

손에도 표정이 있다.

by 아네모네(한향순) 2011. 7. 12.

 

 

 

                                                                            손에도 표정이 있다.

 

 

                                                                                                                                                          한 향 순

 

 

  명치끝에 깍지를 끼어 맞잡은 두 손은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뭉툭한 손가락에는 마디마다 매듭이 지고 온통 주름투성이의 손은 노동의 흔적과 살아온 오랜 연륜을 말해주듯 아주 고단해 보였다. 그 옆에 단호하게 꽉 쥔 주먹은 어떤 힘과 결단력, 그리고 허물 수 없는 불굴의 의지가 느껴졌다. 어느 날 우연히 전시회에 갔다가 손을 소재로 한 사진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그런데 얼굴도 아닌 손의 모습에서 여러 가지 상황과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위의 두 사진 중에서 서로 맞잡은 손은 <메리 앨런 마크>라는 작가가 ‘테레사 수녀’의 손을 찍은 작품으로 어떤 고행도 마다않고 사랑과 봉사로 살아온 수녀님의 일생이 보이는 듯 했다. 그 옆의 사진은 <리처드 이베든>이 권투 선수 ‘조 루이스’의 주먹을 찍은 사진으로 승부의 세계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힘과 용기가 손의 모습에서 저절로 느껴졌다. 그 외에도 사진 작품으로는 유명한 ‘골무를 낀 손’이라든가 앤디 워홀이 자신의 손을 찍어 ‘자화상’이란 제목을 붙여 놓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를 열게 한 <헨리 불>이라는 사람이 왜 하필 손에 관한 작품만 16년 동안이나 사 모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손도 사람의 얼굴 못지않게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많이 놀랐다. 흔히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손에도 여러 가지 표정이 있어 사진으로 나타난 형상을 보고 그 이면의 많은 것을 상상하게 된다. 더구나 요즘 사진 찍는 취미에 빠져 어떤 표현을 해야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까 하고 고심을 하던 중이어서 그 사진들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말이나 글은 인물이나 상황을 표현하는데 긴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진은 단 한 장에 그때의 모든 상황을 압축시켜서 상대방에게 전달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저 우연히 얻어지는 작품보다는 치밀한 계획과 준비 후에 촬영을 해야만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수필이 붓 가는 대로 쓴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고심과 퇴고 끝에 태어나는 과정과 비슷할 것이다.

 

  나에게도 손을 클로즈업해서 찍은 귀한 사진이 한 장 있다. 작년에 남편이 성당에서 교리를 끝내고 영세를 받던 날, 우리 부부도 혼배성사를 올렸다. 결혼 한지 40여년이 다 되어 가는데 신부님 앞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혼인서약을 올린 것이다. 그때 우리가 두 손을 맞잡고 혼인 서약을 하던 중, 어느 지인이 두 손만 클로즈업해서 찍어 준 것이다. 그 사진을 보면 긴 설명도 필요 없이 뭉클한 감동이 밀려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보고 온 전시회 생각에 골몰하다가 물끄러미 내손을 내려다본다. 사십여 년 동안 주부로 살아왔으니 곱거나 예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언감생심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남에게 혐오감을 줄 정도는 아니기를 바라며 전전긍긍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내 손에 머물라치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손을 뒤로 감춘다. 그것은 내손이 남에게 내보이기 싫을 만큼 험한 모양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보다 유별나게 험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별다르게 고생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처녀 때부터 체질이어선지 이상하리만치 손발이 찼다. 그것을 고치려고 한약도 먹고 민간요법도 해보았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으니 류머티즘 증상이 보이면서 손가락 관절에 변형이 왔다. 처음에는 손가락 마디가 몹시 아프다가 어느새 관절마다 툭 불거져서 변형이 오곤 했다. 처음에는 놀라서 병원에도 다니고 좋다는 약도 많이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우리 몸의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손의 역할은 수없이 많다. 주부이니 젊을 때는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것에서 부터 글을 쓰거나 자신을 표현하는 모든 일을 손이 대신해준다. 그래서 손은 우리 뇌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아무튼 여인들은 얼굴 치장 못지않게 손의 치장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요즘은 손톱을 예술적으로 가꾸는 ‘네일 아트 샾’이라는 전문점까지 생겨서 미용실처럼 그곳에서 손톱관리를 해주고 있다. 가늘고 흰 손가락에 색색의 매니큐어를 칠해 예쁘게 단장한 손을 보면 같은 여자가 보아도 살며시 잡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못난 손을 감추느라 아직 한 번도 매니큐어를 칠해 본적이 없다.

 

  손은 말없는 얼굴이라고도 한다. 얼굴이나 손의 모습은 한사람이 살아온 날의 궤적을 보여준다. 또한 얼굴과 손은 그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며 어떤 주장이나 강요도 없이 그 사람의 특징을 잘 담고 있다. 내 못난 손을 보며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어떤 상상을 할지 몹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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