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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한줄기 빛을 찾아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by 아네모네(한향순) 2011. 12. 2.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한 향 순

 

 

   요즘 TV를 보면 노래나 춤, 혹은 연기분야에서 치열한 경연을 펼쳐서 승부를 가르는 프로들이 많아졌다. 또한 각 분야의

 

  숨은 실력자들이 공개 오디션을 보고 전문인으로 데뷔를 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보는 사람도 손에 땀이 날 정도로 팽팽

 

   한 경쟁 속에서 그들은 여러 방법으로 공정한 평가를 받는다. 거기서 우승을 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좌절했다가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기 때문에 뒤늦게나마 영광을 안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프로들을 보고 있자니 오래전에 크게 감동

 

  을 받았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라는 다큐 영화가 생각난다.

 

   영화의 줄거리는 1950년대 쿠바를 주름잡았던 음악인들의 이야기다. 한때 전설의 목소리로 불리었던 ‘이브라힘 페레’는

 

   아바나의 허름한 뒷골목에서 구두닦이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초로의 노인이 된 그에게 낯선 미국인 ‘라이 쿠터’가 찾아온

 

  다. 그는 이발사가 되어있는 ‘쿰바이 세군도’와 왕년의 피아니스트 ‘루벤 곤잘레스’까지 찾아 한자리에 모이게 한다.

 

  그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던 전설의 뮤지션들을 모아 음악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일깨워 준다.

 

  결국 저력 있는 노장들의 녹슬지 않은 솜씨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라는  밴드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다.

 

‘라이 쿠터’는 쿠바 현지에서 만난 노장 음악인들과 아바나에서 6일 만에 즉흥 앨범을 만들었다.

 

  그 음반은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더니 놀랍게도 이듬해 그래미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드디어 그들은 98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까지 하게 되었고, 그 여파로 세계 투어에 오른다. 투어가 끝나자 영화감독은 그들의 앨범 작업 과정

 

  과 세계 투어 과정을 담아 99년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속에는 공연에 대한 기록뿐 아니라, 밴드가 결성되는 과정과 그들의 삶에 대처하는 태도와 음악에 대한 철학이 들어있다.

 

  남미 음악은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들의 리듬과 토착민 인디오의 전통 음악, 그리고 유럽 이민자들이 가져온 멜로디가

 

  합쳐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음악이다. 또한 남미 음악의 거대한 뿌리 한가운데는 쿠바 음악이 자리하고 있는데,

 

  최근 ‘쿠반 재즈’의 열풍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내가 쿠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 영화를 보고 난 후부터였다. 막연히 사회주의 국가이자 시거와 재즈로 유명하던

 

  쿠바에 새로운 호기심이 생겼다. 삼년 전, 관광을 하기 위해 쿠바의 아바나 공항에 내리니 뜻밖에도 얼굴이 새카만 흑인

 

  가이드가 마중을 나왔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이기에 한국인 가이드가 없다고 했다.

 

  자국민 가이드인 ‘알도’는 북한의 김일성대학에서 사년동안 공부를 했다는데, 한국어가 서툴었지만 그런대로 의사소통은

 

  되었다. 우리는 그의 안내로 혁명광장부터 들렸는데 사회주의 국가답게 그들의 영웅인 체게바라의 커다란 초상화와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라는 큰 글씨의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는 미국의 경제 봉쇄정책과 사회주의 몰락이 맞물려 마치 시간이 멈춘 도시 같았다.

 

  아바나는 100년 전에 지어진 도시답게 칠이 벗겨진 건물들이 몹시 피폐해 보였고, 거리의 자동차들도 영화에서나 보았음직한

 

 오래된 구형 차들이 많았다. 더구나 국회의사당 계단에 앉아있던 젊은이들이 내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까만 보자기를 뒤집어

 

 쓰고 사진을 찍는 아저씨에게 단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음악을 좋아하는 낙천적인 국민성 때문인지

 

  너무도 밝고 순수해 보였다.

 

 우리는 아바나 시내로 들어와 영화에서도 보았던 정겨운 ‘말레콘’ 해변을 거닐었다. 시내 중심가에 인접한 바다에 긴 방파제를

 

 만들어 파도가 넘쳐들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그곳은 연인이나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었다. 짙푸른 바닷물이 하얀 포

 

 말을 일으키며 방파제에 부딪쳐서 파도가 사람들을 휩쓸어 갈만큼 거세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물보라를 맞으며 방파제에

 

 앉아 있거나 산책을 즐기곤 했다.

 

  쿠바는 밤에도 우려했던 것보다는 치안이 잘되어 있어서 우리일행도 맥주와 간식거리를 가지고 바닷가로 나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이국의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빡빡하게 짜인 관광일정 때문에 꼭 들어보고 싶었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연주를 들을

 

수 없었고, 그런 분위기에도 젖어 볼 수가 없었다.

 

 헤밍웨이가 오래 살았던 저택을 돌아보며 그를 생각하듯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뒷골목 등을 거닐며 그들의 인생관과

 

 예술혼을 떠 올릴 뿐이다.

 

 더운 여름도 지나고 어느덧 가을이다. 요즘은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면서 쫓기듯이 늘 허둥대며 사는 자신을 뒤돌아보며 가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우뚝 설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열정과 혼까지도 쏟아 부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도 찔끔 저것도 흘끔하면서 한 가지에 몰입하지 못하는 자신이 그저 한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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