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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한줄기 빛을 찾아서)

내 손에는 무엇이 들려있을까

by 아네모네(한향순) 2012. 1. 30.

 

 

      내 손에는 무엇이 들려있을까

 

 

                                                                                                                                                  한 향 순

 

 

   신묘년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뀐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일이나 새로운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새로운 다짐이나 겸허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새해 새달이다. 더구나 지난해 세밑 끝자락에 시아버님을 저세상으로 보내드리고 망자의 영혼이 아직은 우리 곁을 떠나지 못 했으리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시간에는 지난 세월과 자신을 자꾸 돌아보게 된다.

 

  아버님은 늘 과묵하고 말씀이 없으셨다.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시던 술이나 드셔야 말도 좀 하시고 잔정도 표현하셨다. 내가 시집을 온지 38년이 되었으니 아버님을 뵌 지 사십여 년이 흐른 셈이다. 남편과 연애를 하던 시절 남편의 본가로 편지 왕래를 하곤 했었는데, 내 필체를 보시고는 필체가 좋으니 성품도 좋을 것이라고 얼굴도 모르는 처녀에게 후한 점수를 주셨다고 했다.

 

  아버님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남편이 고생하며 공부하던 복학생 시절, 변변한 옷 한 벌이 없이 떨고 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워 며칠을 밤새워 뜬 스웨터를 선물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옷을 입은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옷의 색상이나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니면 옷의 치수가 안 맞는지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더라도 준 사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한번쯤은 입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텐데,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왜 그 옷을 안 입느냐고 다그쳐 물을 수도 없어서 내심으로 서운한 마음만 가득하였다.

 

  그러다가 얼마 후, 부모님께 첫인사를 드리러 찾아갔더니, 아버님이 바로 그 스웨터를 입고 계신 것이 아닌가. 어찌된 영문이냐고 그이에게 다그쳐 물으니 마침 우리가 만나던 날이 방학이어서 그길로 본가에 내려왔다고 한다. 아버님은 그가 들고 온 선물보따리를 보시더니 당신의 선물인줄 알고 흡족해 하시며 얼른 입으셨다고 했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말 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그 스웨터는 바로 아버님 옷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아버님은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아오셔서인지 지나칠 정도로 검소하셨다.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세끼 밥 먹고 살면 되니 절대 욕심 부리지 마라.”고 늘 말씀하셨다. 또 그런 생각을 항상 실천하고 사셨는데, 철없는 자식들은 “사람이 밥만 먹으면 되느냐.”며 불만이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도 시댁에 가면 항상 보일러를 틀지 않아서 집은 추웠고 전기 불 하나도 마음 놓고 켤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몸에 밴 절약정신은 90이 넘어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님을 지켜준 자존심이며, 자식들에게 물려준 소중한 자산이자 교훈이었다. 프랭클린은 “부자가 되는 길은 많지만 가장 확실한 길은 절약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자식들은 아버님을 통해 검소한 삶과 절약하는 습관을 자연스레 배워서인지 남편을 비롯한 모든 형제들이 아버님을 비슷하게 닮았다.

 

  이제 아버님이 남기고 가신 유품들을 정리하면서 그분은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간직하셨을까 궁금했다. 서류 상자를 여니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마지기와 두 분이 갖은 고생을 하여 장만한 논, 밭의 문서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아버님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농지는 이제 모두 아파트지구로 지정되어 다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그뿐이 아니라 몇 년 후면 정들었던 밭이나 논배미는 개발이라는 명분아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뭉개져서 없어질 것이다. 어쩌면 그런 가슴 아픈 변화를 보지 않고 돌아가신 것이 아버님에게는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여러 번 바뀔 것이다. 어릴 때는 가지고 싶던 장난감이나 맛있는 것일 수도 있고 성인이 되어서는 연인이나 친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부터는 자식들의 교육과 좋은 집장만에 연연했을 것이다.

 

  내가 두 해 전부터 흠뻑 빠져서 몰두하는 취미가 있는데 바로 DSLR로 사진 찍기이다. 처음에는 조그만 콤팩트 카메라를 가지고 시작했으나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점점 좋은 기기에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좀 더 좋은 바디로 바꾸고 가지고 싶던 여러 렌즈를 사면서 너무 행복했고 무엇보다 그것들이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좀 더 좋은 것에 대한 갈망은 끝이 없었다. 바디를 업그레이드 하다보면 거기에 어울리는 렌즈를 갖춰야 하고 여러 가지 액세서리도 갖춰야 했다. 또한 사진공부를 하다보면 여러 분야 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가 생기게 마련인데. 나는 풍경사진을 좋아하다보니, 아름다운 풍경을 위주로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진공부를 같이 하던 후배가 자기의 꿈을 이야기 했다. 그는 주로 인물 사진을 찍었는데, 앞으로 꼭 찍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물었더니 사람의 손바닥에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들고 있는 모델로 많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런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자 나는 무엇을 손에 들고 사진을 찍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가장 나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유형의 물질일 수도 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산일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고 보호해주는 것은 사람들과의 크고 작은 소중한 인연일 것이다. 아버님이나 남편 자식같이 가족으로 만난 필연도 있고, 멀리 가까이 있는 친구와 지인들 모두가 소중한 인연이다. 이제 나이가 들면 그런 인연들도 하나씩 놓아 버려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사람들과의 인연의 끈을 잘 고르고 다듬어서 내 삶의 아름다운 매듭으로 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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