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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한줄기 빛을 찾아서)

잠베지강의 일몰

by 아네모네(한향순) 2012. 12. 21.

 

 

잠베지 강의 일몰

 

 

 

우리 집 안방에는 사진 한 점이 걸려있다. 강물과 맞닿은 하늘이 노을에 불타고 있는데, 노랑과 주황색이 섞인 바탕에 붉은 빛이 적당히 몸을 섞고 있다.

 

 또한 똑같은 풍경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강물에 비친 반영이 서로 대칭을 이루고 한쪽에는 검은 피부의 원주민이 노를 쥐고 있는 작품이다. 이 사진은 작년에 아프리카를 여행하던 중 잠베지 강에서 찍은 것이다. 구리 빛 사공의 얼굴은 저녁 햇빛을 받아 강물과 같이 애잔한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다.

 

아프리카 여행을 하게 된 것은 TV에서 즐겨보던 프로 동물의 왕국때문이기도 했다. 광활한 초원에서 야생의 동물들이 자연과 맞서거나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장면들을 보면서 인간의 세상살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고, 언젠가는 드넓은 초원에서 맘껏 뛰노는 야생동물들을 만나리라는 막연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작년에 그 꿈을 현실로 불러들여 아프리카 여행을 하였다.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서 보츠와나에 있는 초베 국립공원에 가기 전에 들른 곳이 빅토리아 폭포와 잠베지 강이다.

 

잠베지 강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도양으로 흘러드는 아프리카 남부 최대의 강이다. 잠베지는 큰 수로혹은 위대한 강이라는 뜻이며, 이 강의 유역에는 앙골라, 잠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모잠비크, 말라위 등이 있다. 잠베지 강으로 유입되는 물의 양은 그리 많지 않지만 급류를 이용하여 잠비아와 짐바브웨 국경에 카리바댐이 건설되어 대규모의 수력발전소가 세워졌다.

 

하류는 일찍부터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 많이 알려졌지만, 중류는 1855년 영국의 탐험가 데이빗 리빙스턴이 아프리카를 탐험하다가 발견하였다고 한다. 더구나 이강이 급류를 만나 갑자기 낙차 하는 곳이 세계 3대 폭포중의 하나인 아름다운 빅토리아 폭포이다.

 

남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이 서구의 영향을 받아 백인들이 많고 선진화 되어 있지만, 짐바브웨나 잠비아는 그에 비해 좀 더 토속적인 나라이다. 잠베지 강을 발견한 데이빗 리빙스턴이 빅토리아 폭포의 장관을 처음 보게 된 것도 잠비아 쪽에서였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짐바브웨나 잠비아에서는 리빙스턴이라는 마을이 있고 그의 이름을 딴 리빙스턴 교가 있으며 곳곳에 그의 동상을 세워 업적을 기리고 있다. 빅토리아 폭포는 낙차가 나이야가라 폭포의 두 배가 될 정도로 크기 때문에 폭포주위에는 물보라의 영향으로 항상 신비스러운 무지개가 떠있다.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에도 우산과 우비로 단단히 무장을 하였건만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물보라를 맞고 카메라가 젖을까봐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했다.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보다 규모는 조금 작지만 낙폭이 커서 장엄한 물줄기가 떨어지며 내는 굉음과 거대한 흰 포말을 만드는 물줄기를 보고 있으면 자연의 위대함에 소름이 돋을 만큼 경외감이 든다.

 

두 나라를 오가며 국경에 걸쳐있는 빅토리아 폭포를 모두 보고, 드디어 평온한 잠베지 강에서 아름다운 풍광과 일몰을 감상하며 음식과 음료를 마시는 크루즈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탄 보트는 물길을 따라 원시림 숲속을 헤쳐 나가며 신비하고 낯선 풍경들을 보여주었다. 맑게 개인 파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둥실 떠있고, 짙푸른 강물 속에 잠겨 있는 울창한 나무들과 그 가지 위에는 희귀한 새들이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가끔은 코끼리 가족이 물을 마시러 큰 몸집으로 어슬렁거리며 강가로 나오거나 물속에서 헤엄을 치던 하마들이 커다란 입을 벌리며 하품을 하곤 했다. 수량이 풍부한 잠베지 강은 웬만한 건기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많은 야생동물들의 생명줄 노릇을 하지만, 강이 범람할 때면 모든 동물들은 고지대로 이동을 해야 된다고 한다.

 

모처럼 바쁜 여행 일정 중에 느긋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며 다른 여행객들과 한담을 즐기고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하늘이 서서히 분홍빛으로 변하더니 여러 물감을 섞어놓은 것처럼 변화무쌍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천지창조의 한 장면처럼 한쪽 하늘에서 붉은 빛이 감돌더니 노란색과 주황색이 엉키면서 형언하기 어려운 환상적인 조화를 만들고 있었다.

 

그 하늘색이 강물에 비치면서 똑같은 반영을 만들고 강물이 일렁이는 대로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면서 출렁이고 있었다. 이국땅에서 만난 황홀한 일몰이었다.

 

나는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면서도 마음만 조급하였다. 지금 내가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을 과연 얼마나 표현할 수 있을지 막막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요즘 사진공부를 하면서 하늘을 자주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낮에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에서 저녁에 어떤 일몰이 생길 것이라고 조금은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때는 예기치도 않게 짙은 구름 속에서 기가 막힌 빛 내림이 생기는가 하면 맑은 날씨였다가도 짙은 해무에 가려 아름다운 일몰을 놓치기 일쑤였다.

 

사진은 그것을 찍을 당시의 공간과 시간을 빠르게 재현하여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기에 사진을 보면 단박에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가 기억의 창고를 열게 된다. 사람들은 그 기억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지도 모른다.

 

 어느덧 기울어가는 내 인생의 저녁에도 일몰이 다가 오고 있다. 저렇게 황홀한 일몰은 아니어도 잔잔하고 은은한 색채의 일몰쯤은 기대해도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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