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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한줄기 빛을 찾아서)

봄을 기다리며

by 아네모네(한향순) 2012. 12. 21.

 

                                            

                                                                      봄을 기다리며

 

 

오늘따라 창밖의 바람소리가 예사롭지가 않다. 우리 집이 아파트 고층이어선지 ~거리는 소리가 마치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크리프를 부르는 캐서린의 목소리처럼 음산하게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봄이 코앞인데도 날씨는 여전히 쌀쌀하고 찬바람은 앙가슴을 파고들듯이 매섭기만 하다

 

엊그제는 강원도에 폭설이 내렸다니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3월인데도 이상저온이 계속되다보니 병원에는 감기 환자들로 북적이고 꽃의 개화시기도 예년보다 훨씬 늦어져서 꽃 축제에도 차질이 온다고 한다.

 

두어 달째 감기를 앓고 있는 나도 어서 찬바람이 잦아들고 따뜻한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오기에 단순한 감기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일주일쯤 지나자 기침감기로 발전을 하더니 폐렴증세를 보이며 병원을 다녀도 별로 차도가 없었다.

 

큰 병원으로 가서 한 달쯤 치료를 받고 좀 나은 듯싶던 감기는 외출을 하고 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곤 했다. 원래 기관지와 폐가 약한 체질인데다가 그동안 나이 먹은 것은 잊고 무리를 했던지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아무튼 끈질긴 놈을 만나서 싸우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데, 여기저기에서 날씨만큼이나 우울한 소식들이 들려왔다.

 

평소에 건강하던 지인이 갑자기 쓰려졌다는 안타깝고 놀라운 소식이 들리는가 하면, 오랫동안 가까웠던 친구의 와병소식에 그만 맥이 풀려버렸다. 병상에 누워있는 그녀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서너 달 동안 체중이 20킬로 정도 빠져서 지금은 40킬로도 안된다고 했다.

 

모든 병의 시작은 사소한 증상에서부터 시작되나보다. 유난히 삼시 세끼 밥만을 좋아하던 친구가 도대체 밥을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변심한 애인처럼 밥이 보기도 싫더니, 배가 고파서 억지로 먹다 보면 토하기 일쑤라고 한다. 대학병원에서 별별 검사를 다해가며 병명을 찾으려 해도 결국에는 찾지 못하고 퇴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먹지 못하고 체력이 고갈 되다보니 눈이 잘 안보이고 청력도 떨어지는 등 여러 가지 이상 증상이 나타나서 다시 입원을 하고, 퇴원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너무도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었다. 사람이 통 먹지를 못하는데도 이상이 없다니, 아니 병명을 찾지 못한다니 어이가 없었다. 친구는 육십이 넘도록 별다른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직장생활을 했다. 직장생활뿐 아니라 집안일 하나 소홀함 없이 해나가며 보통사람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

 

이제 사십년 가까이 다녔던 직장에서 퇴직을 하여 하고 싶은 일을 맘껏 즐기며 노후를 보낼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건강을 잃고 보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친구와의 인연은 삼십여 년 전, 한 잡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는 유치원에 다니는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며 생활 속의 이야기를 수필로 써서 어떤 잡지에 싣곤 했다. 그 잡지에서 가끔 서로의 마음에 와 닿는 글을 읽으며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 후, 우리는 만나서 서로의 집안 이야기까지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고, 가족끼리 여행이나 왕래도 자주 했다. 더구나 삼십년이 넘는 지금까지 내 생일에는 한 번도 잊지 않고 진솔한 편지와 좋은 책을 선물해 주는 소중한 친구이기도 하다.

 

그냥 그렇고 그런 세월이 흐르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눈을 뜬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 또한 오늘과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이렇게 침체되고 허우적거리는 마음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러나 세월로 다져진 우리의 우정은 오늘 같지만은 않으리라 믿습니다.

 

진정 기쁜 마음으로 당신의 생일을 축하 합니다.” 몇 년 전에 보내온 그녀의 편지의 한토막이다. 나이 때문인지 요즘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나 아픈 것마저도 조물주의 섭리라고 체념하게 되는데, 그녀의 와병은 너무 억울하고 부당하게만 느껴진다. 그 친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옆에서 늘 보아온 나이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제발 아프지 말아요.

내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기도의 분량을 더 많이 늘렸다고 너는 말했지.

혼자서만 맛있는 것 먹는 것도 미안하고,

혼자서만 아름다운 곳 찾아다니는 것도/ 미안하다고 했지.

너는 늘 미안하다 하고,/ 나는 늘 괜찮다 괜찮다 하고,

그러는 동안 시간은 잘도 흐르는구나.

세월과 함께 우리도 조금씩 늙어가는구나.

 

그 친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해인님의 시다. 이제 아무리 바람이 불고 추워도 봄은 올 것이다. 봄은 희망의 계절이 아니던가. 죽은 듯싶던 가지에도 새순이 돋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면 그 친구도 언제 그랬던가 싶게 병상을 떨치고 일어 날 것이다.

 

나는 환한 웃음으로 그녀를 맞아 꽃비가 흩날리는 벚꽃 터널 속을 손을 꼭 잡고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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