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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한줄기 빛을 찾아서)

봄 바람

by 아네모네(한향순) 2012. 12. 21.

 




, 바람

 

 

봄은 잠자던 천지를 깨워 싹을 틔우고 생명을 잉태한다. 그러나 따스한 햇볕 안으로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여 모처럼 강아지들을 데리고 뒷산 길을 오르니 오랜만에 나온 두 놈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두 녀석은 누가 보면 쌍둥이냐고 물을 정도로 외모나 체격이 비슷하지만 성격이나 행동은 전혀 딴판이다.

어미인 봄이는 조신하면서도 겁이 많은 편인데, 딸인 바람이는 천방지축 말썽꾸러기이다. ‘바람이는 아직 태어난 지 3년이 안되어 어린 탓도 있지만, 동물도 태어나 자란 환경이 성격에도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봄이는 5년 전 어느 봄날 우리 집으로 왔는데, 그것도 5개월쯤 된 어중간한 처지에 입양을 해온 것이다.


 5년 동안 키우던 치와와를 천식으로 잃어버리고, 다시는 그런 슬픔을 맛보고 싶지 않아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우울해 있던 중이었다. 우연히 친구와 전화를 하던 중 요즘 심경을 말했더니 당장 자기네 강아지를 데려다 키우라는 것이다.

 

 오래 기르던 푸들이 순산을 해서 모두 분양을 하고 한 마리가 남아 그냥 키우려고 했는데, 영업을 해야 하는 가게에서 도저히 두 마리를 키우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아지를 잃어버린 슬픔은 다른 놈을 키워야 상쇄 될 수 있다며, 그야말로 감언이설로 강아지를 데려가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다시는 아무것에도 정주지 않겠다던 결심이 조금씩 흔들리고, 어느 날 나도 모르게 한 시간을 넘게 달려 친구네 집을 찾았다. 친구의 품에 안겨서 나온 놈은 생각보다 예쁘지도 않았고, 숱도 적어 꾀죄죄한 모습에 겁에 질려서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가게 집에서 대소변 못 가려 꽤나 구박을 받았는지 놈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받아 안고 차에 오르자, 자기의 주인이 된 걸 알았는지 금방 내 품을 파고들며 친근감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집에 와서부터 터졌다. 5개월이 넘도록 전혀 용변훈련이 되어있지 않아 아무데나 오줌을 누는 통에 집안은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식구들의 성화에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방법은 용변시간에 맞춰 밖으로 산책을 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만 제외하면 봄이는 아주 얌전하고 조신한 처녀였다. 혼자 두고 나가도 절대 짖거나 말썽을 피우는 일도 없었고 오히려 너무 소극적인 성격에 오히려 슬금슬금 눈치만 살피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식구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여 더욱 사랑을 받게 되었고, 어느덧 성견의 징후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식구들은 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불쌍하여 불임수술을 해야 할 것인가, 수태를 시켜야 할 것인지 망설이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미의 소임을 맡겨보자고 결정을 내렸다.

 

봄이가 수태를 하고 배가 점점 불러오자 그것 또한 보기가 안쓰러웠다. 몸이 무거워지자 호흡도 가빠지고 힘이 들어 하는 모습은 사람과 마찬가지였다. 그런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우리가 외출을 한 사이에 드디어 출산을 한 것이다. 딸아이가 숨 가쁘게 전해온 소식은 두 마리를 출산하고 끝인 줄 알고 있었는데 삼십분쯤 후에 한 마리를 더 낳았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강아지 집을 들여다보니 봄이는 힘이 들었는지 축 늘어져있고 꼬물꼬물한 새끼들이 서로 젖을 먹겠다고 어미 품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마지막 출산을 한 놈은 덩치도 다른 놈의 반밖에 되지 않고 제대로 기지도 못하는 다리가 아주 가늘었다. 필시 어디가 기형이거나 미숙아임이 확실한데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억지로 어미 곁에 끌어다 젖을 물리니 그래도 힘차게 젖을 빨았다.

 

산후 며칠쯤 되어 외출을 했다 돌아오니 멀쩡하던 새끼 한 놈이 널브러져 있었다. 깜짝 놀라 안아보니 이미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만한 이유가 없었는데 무슨 일인지 몰랐다. 차라리 문열이로 태어난 막내가 그랬다면 이해가 될지언정 그놈은 건강하고 야무졌는데 무슨 일인지 몰랐다.

 

그리고 며칠 못가서 결국 막내도 숨을 거두고 오로지 한 놈만이 어미 곁을 맴돌고 있었다. 봄이는 제 새끼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힘겨운 어미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남은 새끼 한 마리는 힘차게 젖을 빨고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나 이상한 것이 보름이 지나도 눈을 뜨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여 동물병원에 데려가니 한쪽 눈이 선천적으로 없는 기형이라고 하였다.

 

겨우 한 마리 남은 놈이 기형이라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눈에 대해서는 평생 지워지지 않은 상처가 있어 몇 번이나 다른 곳으로 입양을 보낼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키우게 되었다.

 

바람이라는 이름도 마치 바람처럼 빠르게 돌아다닌다고 하고 붙여진 이름이다. 바람이는 태어난 환경부터 다르고 어미의 사랑과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서인지 그냥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법이 없었다. 어디서나 날쌘 바람돌이처럼 뛰어다니거나 거침이 없었다.

 

장난도 심해서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휴지통을 엎어놓거나 신발을 물어다가 놓아 집안은 난장판이 되곤 했다. 그러나 어쩌다 우리가 없어도 저희 둘이 같이 있으니 덜 외로울 것이라고 위안은 되었다. 봄이는 어미답게 모든 것을 양보했다. 바람이가 장난을 치거나 으르렁 거려도 그저 아무런 대꾸 없이 받아주었다.

 

이제는 애완견이라기보다는 한 가족처럼 정이 든 봄이와 바람이. 손자들이 없는 집안에 강아지 두 마리가 우리의 외로움을 덜어 준다고 하면 사람들이 개소리 하지 말라.”고 조소를 퍼부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두 놈이 제발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자라기만을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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