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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한줄기 빛을 찾아서)

삶과 죽음의 경계

by 아네모네(한향순) 2012. 12. 21.

 

 

삶과 죽음의 경계

 

 

붉은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짙은 연기를 내뿜고 검은 잿더미를 흩날리면서 높게 쌓아놓은 통나무 더미가 활활 타고 있다. 다비식이 거행되는 동안 그곳에 모인 수많은 스님과 산등성이까지 까맣게 모인 추모객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타오르는 불길을 지켜보면서 애통하고 숙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늘 다비식을 치르는 큰스님은 우리나라 불교계에 커다란 업적을 남기신 분이며 더구나 비구니들의 어머니 역할을 해 오신 분이라고 한다. 조문을 봉독하는 스님은 돌아가신 큰스님의 업적과 가르침을 애조 띤 목소리로 낭독하고 있다.

 

바람에 펄럭이는 수백 개의 만장에는 큰스님을 기리는 애틋한 문구와 법구(法句)들이 쓰여 있는데, 모두 가신님을 애도하고 있다. 다비식 사진을 찍기 위해 추모객들 사이에 끼어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지만 종교가 달라서인지 조금은 어색하고 이방인 같은 기분이었다.

 

더구나 생각 없이 집을 나서느라 작업복에 커다란 카메라를 둘러맨 나의 복장은 조문객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다. 사진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잘 표현하여 여러 사람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까 늘 고심하였다. 즐겁고 기뻐하는 모습이나 아름다운 풍경사진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만, 슬프고 애통한 삶의 모습들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멀지않은 곳에서 다비식을 거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앞뒤 생각 없이 카메라를 챙겨서 나온 터였다. 식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신도들과 조문객들은 구름처럼 영결식장으로 모여들었다. 빽빽하게 운집한 사람들 사이를 뚫고 바라본 대형 스크린 속의 큰스님의 모습은 인자하면서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근엄함이 엿보였다.

 

평생을 미망에 빠진 중생들을 제도하는 일에 바쳐온 큰 스님의 삶이 군데군데 써 붙인 법구에 잘 나타나 있었다. 영결식장에서 대충 촬영을 마친 후, 식장을 빠져나와 다른 사람들보다 한발 먼저 다비식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다비식을 거행하는 곳은 영결식 장에서 삼십분쯤 언덕으로 올라가는 곳에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길가 군데군데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신도들이 조문객들을 위해서 물이나 떡 등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힘든 일을 자청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종교의 힘이 클 것이다. 잠시 후에 수많은 스님들의 행렬이 뒤를 잇고 드디어 큰스님의 법구와 알록달록한 만장을 든 조문객들이 구름처럼 삽시간에 언덕을 메웠다. 큰 스님이 저들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기에 거리를 메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애통해 하는 것일까.

 

드디어 다비식의 첫 순서인 거화 의식이 시작되었다. 커다란 통나무를 쌓아놓은 위에 새끼를 꼬아 만든 타래들을 올려놓고 여러 개의 횃불이 당겨졌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스님 불 들어가니 어서 나오세요.”라는 커다란 외침과 함께 불은 삽시간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조문과 함께 스님의 극락왕생을 비는 불경이 이어지고 식장은 타오르는 불길처럼 큰스님의 추모 열기로 가득했다. 나는 잠시 촬영을 하는 것도 잊고 타오르는 불길 속을 응시하였다. 언젠가는 내 육신도 저런 불속에 던져지리라고 상상을 해보며 내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쯤 일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래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하지 않던가. 언제 이승에서의 삶이 끝나고 죽음을 맞는다 하더라도 그런 이치를 터득할 수 있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모든 집착에서 놓여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인도의 갠지스강변에서 보았던 화장장의 모습도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어스름한 새벽 강가에는 전날 밤, 종교의식을 치렀던 잔해들이 널브러져있고 아침부터 강가에 나와 목욕을 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가운데 한쪽에서는 화장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그곳에는 곧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어머니의 강이라는 갠지스 강에 와서 목욕을 하여 그동안 지은 죄를 모두 씻은 다음, 죽음을 맞고 화장을 하여 강가에 뿌려지는 것을 그들은 최고의 행운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은 괜찮지만,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장작을 충분히 살 돈이 없어 미처 다 타지도 못한 시체들을 그냥 강가에 던진다고 했다. 인도 사람들은 그 강물을 마시고 몸을 씻으며 그 곳에다 육신을 던지며 내세에는 좀 더 나은 계층의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삶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별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낙천적으로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파인더 속에 스님들이 애통해 하는 모습과 주위의 풍경들이 타오르는 불꽃 때문인지 흔들거리며 왜곡되어 보인다.

 

어쩌면 우리 눈으로 보이는 사람이나 사물들의 실체도 어쩌면 이렇게 왜곡되어 보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지닐 때, 비로소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진리란 찾거나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란 여러분이 자신의 근본을 믿고 그곳에 모든 것을 맡길 때 자연히 드러나는 것입니다.”라는 큰스님의 말씀이 오늘 나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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