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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한줄기 빛을 찾아서)

지신밟기를 하는 마음으로

by 아네모네(한향순) 2012. 12. 21.

 

 

 

                                              지신밟기를 하는 마음으로

 

 

 

요사이 기승을 부리는 폭염으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어쩌다 겨우 잠이 들다가도 열어놓은 창문사이로 벼락을 치는 것 같은 함성 때문에 간간이 잠을 깨기도 한다. 밤마다 올림픽 경기가 있어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나같이 스포츠에 무관심한 사람은 중요한 경기가 있건 말건 잘 시간이 되면 꼬박 잠자리에 들지만 피가 끓는 젊은 사람들은 야식까지 사먹으며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우리 집도 남편과 딸은 스포츠 관람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어서 함께 야구장에 간다거나 매일 TV를 보며 열을 올리는 편이다. 자기가 직접 뛰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편을 응원하며 대리만족을 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올림픽이 시작되고부터는 온 국민의 관심이 올림픽 경기에 쏠리고, 그들을 응원하면서 힘들고 살맛 없던 일상에 활기가 생긴 건 분명히 신나는 일이다.

 

요즘은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누가 이웃인지 얼굴도 모르고 심지어 같은 라인에 누가 이사를 왔는지도 잘 모르는 세태이다. 그런 이웃끼리도 같은 시간에 함께 웃고 함성을 지르며 맘 놓고 좋아하는 일이 스포츠 말고 또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도 이 동네에 이사 온지 2년이 넘었지만 아래, 윗집이나 서로 인사를 할 정도이지 어느 층에 누가 사는지는 잘 모른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기르던 30여 년 전, 우리는 화곡동에서 13년을 살았다. 그것도 남편직장에서 공동으로 지은 주택단지여서 그 동네 사람들의 가족사항은 물론 숟가락 숫자까지 서로 알 정도였다. 단독주택이기도 했지만 누구네 집에서 맛있는 것을 만들면 냄새가 솔솔 나서 담 너머로 이웃끼리 나누어 먹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누구네 집에 갑자기 손님들이 들이 닥치면 부족한 상이나 그릇들을 빌리러 이웃을 드나들곤 했다. 지금이야 명절 외에는 집에서 손님을 치르는 문화도 없어지고 굳이 이웃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 없어지다 보니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더 좋더라.”라는 이웃사촌의 개념도 희박해졌다.

 

사진 촬영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집에서 가까운 민속촌을 자주 찾았다. 그곳에 가면 우리 기억 속에 잊혀져가는 풍경이나 풍습을 발견하게 되고 아련한 향수 속에 젖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우리의 풍습 중에 지신밟기라는 놀이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것을 찍기 위해 두어 해 동안 민속촌에 가서 촬영을 하고 나름대로 많은 문헌도 찾아보았다.

 

지신밟기는 옛 부터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일종의 가면행렬 놀이로 마을과 집안의 평안을 빌고 나아가서는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음력 정월 대보름 농악대가 집집을 돌며 지신(地神)을 달래고 복을 비는 민속놀이로 지방에 따라서는 '마당 밟기''매귀(埋鬼)'라고도 했다.

 

이 풍습은 동래 지방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옛날의 동래지신밟기는 음력 12월에 악기와 의상, 도구 등을 준비하며 조선시대 각 계층의 신분인 사대부, 포수, 하동, 각시 등 35명 내외의 인원을 구성하여 놀이연습을 했다.

 

사대부는 총지휘자격이고, 하동과 포수는 상대역으로서 흥을 돋우는 구실을 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동래지신밟기는 조선 후기에 행해지던 것을 원형으로 재구성하여 1970년 경 부터 민속놀이로 다듬은 것이라고 한다.

 

지신을 밟으면 터주가 흡족해 하여 악귀를 물리쳐 주인에게 복을 가져다주고 가족의 수명과 건강을 지켜주며 풍년이 들게 해준다고 전한다. 농악대나 풍물패 일행을 맞이한 주인은 주안상을 차려 그들을 대접하고 금전이나 곡식으로 사례를 했는데, 이렇게 모은 금품은 마을의 공동사업에 쓰기도 했다.

 

민속촌에서 재현되는 지신밟기도 풍물패가 여러 집을 돌며 흥을 돋구어 지신을 달래고 악귀를 쫓아내며 그 집에 사는 주인의 건강과 부귀를 빌어주는 행사이다. 더구나 마당 뿐 아니라 부엌이나 장독대에 있는 터주를 달래어 장맛이 변하지 않고 음식에 탈이 나지 않기를 빌어준다. 그 집의 주인은 풍물패들이나 구경 온 사람들에게 대개 떡이나 막걸리를 대접하여 답례를 하곤 한다.

 

몇 년 전에 남미 쪽으로 여러 날 여행을 한 적이 있다. 한때 개발도상국에 있던 우리나라를 탈출하여 이민 보따리를 꾸린 사람들이 브라질이나 남미 쪽으로 많이 정착을 했는데 이삼십년 전, 이민초창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같은 동포가 이민을 오면 서로 도와주어 장사를 하게 하거나 잘살게 도움을 주었는데 한국 사람들은 자기 동포에게 사기를 치거나 속임수를 써서 보따리를 뺏는 행위를 많이 했다고 한다.

 

물론 살기 어려운 시절에 만연하던 일화이기는 하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처럼 우리 국민성의 치부를 들킨 것 같아 너무도 씁쓸했다.

 

요즘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등 해외에 있는 동포들도 우리의 문화를 즐기기 위해 지신밟기놀이를 많이 한다고 한다. 진심으로 이웃의 안녕과 평화를 빌어주며 지신밟기의 정신을 이어간다면 같은 동포끼리 서로 반목할 일도 없어지고 이웃끼리도 서로 건강과 평화를 빌어주는 풍토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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