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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한줄기 빛을 찾아서)

미로 속의 도시

by 아네모네(한향순) 2012. 12. 21.

 

 

미로 속의 도시

 

 

 

골목은 뒤엉킨 실타래 같았다. 겨우 두어 명이 지나칠만한 골목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자칫 길을 잃어버릴까봐 잔뜩 긴장이 되었다. 거기에다 짐을 실은 노새나 망아지가 지나치기라도 하면 부딪치지 않으려고 벽에 바짝 붙어있어야 했다.

 

시간이 정지된 듯 12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 아직도 대장간이나, 손으로 금을 직접 두드려서 만드는 세공가게도 있고, 개인이 빵 반죽을 해 와서 빵을 만들어가는 빵공장도 있었다. 좁은 골목 안에는 마른 과일이나 사탕 등을 파는 아주 작은 노점상도 있고 회교 사원에서부터 심지어 대학까지 골목에 함께 공존하는 곳이 모로코의 옛 수도인 패스다

 

패스는 8세기 경 인 서기 87년 이슬람 세력의 분열로 마호메트의 후손인 술탄 이드리스가 수니파를 이끌고 모로코에 들어와 처음 이슬람의 이드리스 왕조를 만든 곳이다. 이곳은 한때 많은 사원들이 세워져 종교적 성지가 되었고, 스페인으로부터 학자들을 데려다가 대학을 세워 학문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또한 모든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상업도시로도 번창하게 되었는데 전성기였던 12세기에는 인구가 무려 12만 가구나 살았다고 한다. 옛날에는 유명한 교육도시였던 패스에 지금은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골목을 배회하는 아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번 여행을 떠나 올 때부터 스페인이나 포르투갈보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곳은 모로코였다. 우리는 아름다운 스페인의 도시들을 거의 둘러보고 타리파로 이동을 하여 페리를 타고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모로코의 탕헤르 항으로 들어왔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곳 중 최단거리로 1시간 만에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건너왔지만 두 대륙은 너무나 많은 문화적, 경제적인 차이를 지니고 있었다. 아직도 모로코의 어린 소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스페인을 오가는 버스 뒤꽁무니나 밑창에 매달려 유럽으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한다고 했다.

 

탕헤르는 지중해 입구에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북단에 위치한 모로코의 항구 도시인데, 유럽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아프리카로 들어갈 때 처음 만나게 되는 첫 도시이다. 우리는 탕헤르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하얀 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그 도시는 이름처럼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았다.

 

 카사블랑카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곳은 핫산 메스키다이다. 이곳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이슬람사원으로 카사블랑카의 바다를 매립하여 지은 사원인데 한꺼번에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사원 앞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과 차도르를 두른 여인들이 한가롭게 앉아 있었다. 우리는 카사블랑카에서 하룻밤을 묵고 드디어 목적지인 고대도시 패스에 도착했다.

 

패스에 도착하여 먼저 구시가지 메디나 지역이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전망대로 갔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메디나(medina) 지역은 중심이 될 큰 건물이 보이지 않고 모두 고만고만한 크기와 높이를 가진 집들이 쫙 깔려있고, 큰길도 없이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 지역은 미로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였다는데, 성채가 함락되더라도 많은 군대가 일시에 밀고 들어올 수 없도록 방어전술로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패스의 메디나는 거의 완벽하게 1200년 전의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서 세계 최대의 미로라는 별명과 함께 1981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신없이 골목을 한참 돌다가 들어간 가죽 염색 공장은 우리나라 TV에서도 본 적이 있는 곳이다. 가죽의 원단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천년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방법 그대로 손질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비둘기 똥이나 낙타의 배설물, 그리고 식물에서 뽑아낸 천연재료를 섞어 만든 액체에 가죽을 한참동안 담가 놓은 다음 사람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무두질을 하여 천연염료로 염색을 한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는 모로코가죽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그곳에서 주는 나뭇잎을 물고 있어도 머리가 띵 할 지경이었다.

 

패스의 메디나 지역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오자 먼 시간속의 여행을 하다가 깨어난 기분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고향도 이런 좁은 골목이 많은 도시였다. 우리가 살던 집은 왜정 때 지은 이층 목조 가옥이었는데 그 골목에는 비슷한 집들이 쭉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 좁은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며 놀았다.

 

그 골목에 가게는 없었지만 아이스케키 장사도 지나가고 밤이 되면 찹쌀떡장수나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식빵 부스러기를 파는 장사도 지나갔다. 우리는 그 좁은 골목에서 울고 웃으며 어린 꿈을 키웠다.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생활하는 미로속의 사람들이 우리 눈에는 열악하게 보이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 방식대로의 삶을 고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만은 꿈을 잃지 말고 커주기를 바랄뿐이다.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여 희망이 없는 아이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버스 밑창에 매달려 탈출을 꿈꾼다면 그건 얼마나 슬플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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