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아픔
친구와 헤어져 밖으로 나오니 쏟아지는 햇빛으로 눈이 부셨다. 나는 멍하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온 후의 쾌청한 날씨처럼 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발걸음을 옮기며 조금 전에 친구와 나누었던 얘기들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정말 사람의 운명이란 것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일까. 그리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것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일까. 아무도 대답을 줄 수 없는 어리석은 의문이 오늘 따라 아프게 머리를 맴돈다.
그 친구와 만난 것은 묘한 인연이었다. 십 육 년 전, 한 월간지에 내 글이 실린 적이 있었는데, 그가 우연히 그 글을 읽고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 때 친구는 창원이라는 지방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그 후, 일 년쯤 지난 뒤 남편을 따라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전학시키고 학교에 나왔다가, 어머니 백일장에 실린 내 글을 읽고 주소를 수소문하여 우리 집을 찾아왔다. 이름이 흔하지 않아 기억이 나기도 했지만 어쩐지 예전에 읽은 글쓴이와 같은 사람일 거라는 예감 때문에 반갑게 달려왔다고 했다.
나는 서투른 내 글을 읽고 기억해 주는 그가 고마웠고, 그는 낯선 도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거의 매일 우리 집을 찾아왔다. 우리 아이들과 친구의 아이들은 나이도 고만고만하여,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가족끼리 소풍이나 여행을 가기도 하고, 서로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위로하고 달래 주기도 했다.
그렇게 한 동네에서 가깝게 오가며 육 년쯤 함께 지냈다. 그러다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가끔씩 만나면 친구는 아이들로 해서 속상해 하기도 하고 대견해 하기도 했다. 그는 어려서 일찍 어머니를 여의어서인지 유난히 아이들에게 정을 쏟았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재수를 하고 있는 막내딸이 자주 아프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곤 하였다. 그 아이는 심성이 곱고 착해서 시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생긴 신경성 증세일 거라고 나는 친구를 위로하곤 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병세가 심상치 않아 종합병원에 입원하여 검사를 한 결과, 치료가 불가능한 악성 종양을 앓고 있어서 얼마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진 것이다.
요즘은 기도원에 들어가 오직 주님께만 매달리며 기도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친구에게 나는 아무런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로도 그의 아픔을 덜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단지 손을 꼭 잡고 겨우 한 말은 “정말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 아이의 운명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갈 때까지 편하게 대해 줘” 라는 어리석은 말뿐이었다.
지난봄이었다. 한동안 아무리 애를 써도 가닥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답답함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끙끙 앓고만 있다가는 몸도 마음도 병마에 짓눌려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마치 싸울 태세를 갖춘 사람처럼 무작정 차를 몰고 나왔다. 목적지도 없이 그저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탁 트인 들판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한적한 시골길로 들어서다 보니 메마른 나무에는 연록색의 새순이 돋아나고 산에는 온통 꽃들의 축제가 시작된 듯 색색의 물감을 칠해놓은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계절을 잊고 산 사람처럼 “그래 참 봄이 왔구나.” 하고 새삼 놀라며 길섶에 차를 세우고 무작정 오솔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혼자서 깊은 상념에 빠져 쉬엄쉬엄 산을 오르다보니 어디에선가 징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 속에 무슨 징 소리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나는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것처럼 그 소리를 따라 낯선 산길을 더듬어 갔다. 드디어 소리의 진원지에 도착한 나는 그 곳의 정경에 너무 놀라고 말았다.
원색의 옷을 입은 무녀들이 징 소리에 맞춰 방울과 부채 등을 들고 질탕하게 굿판을 벌이고 있었다. 물론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비슷한 광경을 본 일은 있지만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는 처음 대하는 놀라운 풍경이었다. 소와 돼지를 통째로 잡아 시퍼런 칼을 꼽아놓고, 제대(祭臺) 위에는 울긋불긋한 색지(色紙)에 조상신의 이름을 적어 만국기처럼 걸어놓고 갖가지 음식들을 쌓아 놓은 후 여러 개의 촛불과 향을 피우고 있었다.
구경나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어느 돈 많은 사업가가 병이 나서 큰돈을 들여서 하는 굿이라고 했다. 나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호기심 때문에 그들 틈에 끼여 굿 구경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큰무당인 듯한 사람이 조상신에게 바치는 주문을 외우며 수없이 절을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묻기도 하며 아는 체를 하는 것인데, 신기한 것은 그들이 거의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 많은 것을 생각했다. 이 세상에는 자기의 의지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포기해야 하는 일도 많을 것이라고...., 하지만 사람은 자기의 운명을 미리 알 수 없기에 절망하고 포기하다가도 다시 기대를 걸고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닐까.
친구가 신에게 의지하고 매달리는 것이나, 지난번 굿판을 벌이던 아픈 사람도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싶어서일 것이다. 나는 절망에 빠져 있는 친구와 그의 딸이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붙잡고 일어서서 운명에 도전할 수 있기를, 오래오래 마음속으로 빌었다.
199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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