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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포토기행(길에서 길을 생각하며)

꽃보다 할배

by 아네모네(한향순) 2013. 8. 31.

 

 

꽃보다 할배

 


한 향 순

 

 

요즘 TV에서 체험 프로그램인 <꽃보다 할배 >라는 프로가 인기를 끌고 있다. 노년의 탤런트 네 명이 배낭여행을 하며 겪는 웃지 못 할 상황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두 70~80대인 노익장들이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으로 여행을 하며 겪는 에피소드를 보여주는데,남 같지 않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슷한 세대이기도 하지만 TV에서 자주 보아왔던 친숙한 얼굴이기 때문이다.

 

촬영을 하기위해 떠난 여행이지만 짐을 꾸리던 그들의 표정은 아이들처럼 들떠있었다.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일은 기대 반, 걱정 반이겠지만 여행이란 아직도 그들을 설레게 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몸이야 고달프겠지만 일상을 탈출하며 겪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무덤덤하게 이어지던 생활에 기분 좋은 자극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사 년 전,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부부도 낯선 도시를 안내자도 없이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호주에 있는 아들네 집에 가는데 이왕이면 새로운 도시를 둘러보고 가려고 멜버른에 일주일을 머물렀다. 외국의 도시를 여행하면서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의사소통이었는데, 궁하면 통한다는 말만 믿고 무조건 길을 떠난 것이다. 그곳에서 머물 숙소는 다행히 한국에 다니러간 아들 친구의 아파트를 빌려 쓰기로 했는데 그곳을 찾아 가는 일부터 걱정이었다.

 

 

우리는 여행자센터에 가서 시내 지도를 구해서 머리를 맞대고 길을 익혀 도보로 걷거나 트램을 타고 며칠 동안 시내 박물관이나 미술관등을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저녁에는 멋진 야경을 즐기다가 젊은이들이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즐기는 팝에 가서 우리도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하였다. 그러나 멜버른 외곽지대에 있는 관광지는 어떻게 가야할지 막막하였다. 다행이 현지 관광회사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몇 군데 신청을 하고는 바짝 긴장이 되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과연 우리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 정해진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 가니 관광버스들이 여러 대 서 있었는데 어느 것을 타야 할지 우왕좌왕하였다. 눈치코치로 우리가 선택한 <그레이트 오션로드>라는 곳을 가는 버스를 올라타고 보니 여러 가지 걱정이 엄습해 왔다. 그때부터 운전기사 겸 가이드인 아저씨의 기나긴 설명이 시작되었는데, 말이 너무도 빨라서 무어라는 소린인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남편마저도 젊을 때는 영어를 조금 하더니 나이가 들고 오래 쓰지 않아서인지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환상의 로맨틱 가도라는 말처럼 에메랄드빛 물결이 이어지는 바다 한가운데에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조화롭게 서있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정말 소문처럼 아름다웠다. 버스는 절경의 중간 중간에 쉬면서 관광객들에게 자유시간을 갖게 했는데 몇 시에 어디로 모이라는 멘트를 놓칠까봐 우리는 경치도 보는 둥 마는 둥 몹시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무사히 출발했던 곳에 도착하여 관광을 마친 후, 버스에서 내리니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루 종일 긴장을 한 탓인지 몸이 솜처럼 늘어져서 저녁을 사먹고 들어가기로 했는데 어느 집의 음식이 우리에게 맞는지 전혀 정보가 없으니 알 수가 없었다. 한식당은 얼른 눈에 띄지 않고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중국식당이었다. 중식은 그래도 우리 입맛에 맞을 것 같아 여기저기 차이나타운을 기웃거리는데 어느 식당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옳거니 하고 우리도 얼른 맨 뒤로 가서 차례를 기다렸다. 역시 눈치 백단인 나의 짐작은 빗나가지 않아 우리는 값이 싸고도 맛있는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증기 기관차를 타고 거꾸로 시간여행을 가는 <단데농 파크, 퍼핑 빌리>와 호주의 민속촌이라 할수 있는 <소버린 힐>등 을 더 둘러본 후 우리는 아들네가 있는 브리즈번으로 왔다. 60이 넘은 노부부가 누구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일주일간 배낭여행을 한 셈이다. 아들은 우리에게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격려를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낯선 곳에서 무엇이던지 우리가 해결해야하니 힘은 들었지만 그것 또한 새로운 경험이었고 즐거운 모험이었다.

 

 

올 여름 나의 절친한 친구는 캐나다로 가서 차를 렌트한 후 알라스카까지 운전을 하며 힘든 배낭여행을 한 친구가 있다. 육십 대 중반인 여자의 몸으로 만킬로가 넘는 거리를 손수 운전을 하면서 진행하는 여행은 정말 위험한 모험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힘들었던 기억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고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낯선 곳을 찾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호기심도 줄어들고 도전정신도 줄어든다고 한다. 오늘도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를 보며 나는 또 낯선 곳을 찾아 나설 궁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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