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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포토기행(길에서 길을 생각하며)

바다를 그리워하는 형도

by 아네모네(한향순) 2013. 10. 15.

바다를 그리워하는 형도

 

형도를 생각하면 내 가슴속에는 늘 쓸쓸한 바람소리가 난다. 특히 늦가을의 형도에는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과 인적 없는 벌판에서 바람을 맞고 띄엄띄엄 서있는 앙상한 나무들 때문에 더욱 쓸쓸한 느낌이 짙어진다.

한때는 어민들이 물고기를 잡고 조개를 캐던 바다 속의 섬이었던 형도. 바닷물이 얼마쯤 들어왔는지 가늠하기 위해서 저울 섬으로 불렸던 형도는, 시화호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마구 파헤쳐져서 허리가 동강 난 채 피폐하게 버려진 땅이 되었다.

 

 

 

행정구역이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독지리로 되어있는 형도에는 약간의 보상을 받고도 예전의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고 어렵게 살고 있는 산동네 사람들이 있다. 한때는 연안어업의 중심지였던 형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호수에 고립된 불모지가 되었어도, 그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지 못하고 그곳에 남아서 불편한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형도에 가면 아직도 바다냄새가 나고 바닷가에서나 볼 수 있는 조개껍질이나 굴 껍데기가 여기저기 남아있다. 더구나 가을에는 붉은 칠면초와 나문재나물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어 그곳이 한때 바다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제는 바닷물도 들어오지 않는 습지가 되어 삘기와 갈대만이 우거졌지만 그런 쓸쓸함을 좋아하는 이들이 찾아가는 오지의 땅이 되었다.

 

 

 

내가 처음 형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5년 전이었다. 물론 사진촬영을 하기위해 찾은 곳이었는데, 사람의 발길이 뜸한 이런 곳이 아직 남이 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채석작업으로 허리가 동강난 돌산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넓은 벌판에 헐벗은 나무 몇 그루와 허리까지 차오르는 갈대밭이 끝도 없이 펼쳐있었다.

그곳에는 붉게 타오르는 일출이나 일몰은 물론, 거리낌 없이 탁 트인 하늘이 있어 언제나 우리에게 변화무쌍한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꼴은 꼭 찾게 되는 단골 출사지가 되었다.

 눈이 내린 겨울은 하얀 설원이 있어 좋았고 삘기 꽃이 피는 늦은 봄에는 바람에 날리는 하얀 삘기 꽃 천지가 되었다. 태풍이 부는 날은 바람과 드라마틱한 하늘이 있어 멋지고 가을은 넓은 들판에 끝없는 갈대의 향연이 펼쳐진다.

 

 

 

더러는 근접해 있는 어섬과 우음도 쪽으로도 발길을 돌리고, 시화호 댐 쪽으로 거슬러 올라 대부도나 궁평항 쪽으로 가서 바다풍경을 촬영하기도 하지만 제일 발길이 끌리고 마음에 가는 곳이 역시 형도이다. 이곳을 자주 찾다보니 그만큼 정이 들었고 어쩌다 바빠서 발길이 뜸해지면 계절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언젠가는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지금의 흔적마저 사라지게 될 땅 형도. 그때까지라도 남아있는 흔적을 찾아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셔터를 누른다. 어쩌면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바다가 육지로 변하고 산이 채석장으로 무너져도 사람들은 더 넓은 땅을 얻기 위해 애쓸지 모른다. 그리고 바다를 그리워하는 형도의 이야기도 곧 망각 속에 묻힐 것이다.

 

 

 

                                                                                 <  좋은 수필 > 2013년 11월  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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