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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나는 수필을 어떻게 쓰는가.( 이상은 "불씨"에 수록된 글)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8. 12.

나는 수필을 어떻게 쓰는가?

 

  우선 제대로 된 수필 한편도 못 쓰는 제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 의문스럽지만 수필을 쓰는 사람들의 숙제라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글이란 걸 쓸 때는 그저 가슴에 응어리진 이야기를 쏟아내는 심정으로 폭포수처럼 마구 쏟아 내기만 했습니다.

 

  우선 제가 글을 쓰게 된 동기는 1979년 여성동아에 응모한 “쓰고 싶은 이야기”라는 논픽션에 당선이 되고 나서부터입니다. 그 후로 여기저기 잡지에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이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나는 갑자기 우쭐해져서 아무생각 없이 이런 저런 글을 쓰다 보니, 글을 멋있게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자신을 미화시키거나 감정을 부풀리는 글을 쓰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이건 아닌데”라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고, 글쓰기가 감정의 사치를 부추기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는 글하고는 아주 먼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문학 언저리에 서성이며 맴돌다가 이왕 글을 쓰려면 제대로 알고 한번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제가 살던 가까운 동네에 “계몽문화 쎈터”에서 수필 강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몇 달 공부를 한 후 아무도 몰래 전국 주부 백일장에 참가하였는데, 생각지도 않게 차석인 수필부문 입상을 타게 되었고, 글쓰기에 조금씩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아마도 1989년이었으니 여성동아에 글을 쓴지 10년 동안 뜸을 들이고 난 후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막 수필이 무엇인지 알려고 할 때 우리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건강상 그만두시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한국일보에서 이정림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 밑에서 거의 십 년 가까이 수필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어렵고 힘든 것이 수필 쓰기인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평범하고 하잘 것 없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말처럼 비로소 내가 어떤 존재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주었을 때, 그 것은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별것 아닌 삶을 별것인 것으로 만들고, 누추하고 허름한 삶을 의미 있는 삶으로 바꿔주는 것이 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선 글은 쓰고 싶은 충동이나 어떤 계기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간혹은 어떤 주제나 소재에 대하여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가슴을 철렁이게 만드는 감동을 받았을 때 글을 쓰고 싶어집니다. 그런 순간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의 감동을 소중하게 기억의 보따리에 잘 꾸려서 보관을 합니다.

 

  더러는 그 보따리를 잃어버리거나 퇴색이 될 수도 있지만, 간단히 메모를 해 둔다거나 자주 생각해보며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그리고 격한 감정을 삭이며 익숙해지려 노력합니다. 그러다가 그 소재와 잘 맞는 다른 소재를 만나면 그것에 어울리는 주제가 떠오를 때 비로소 글을 쓰게 됩니다.

 

  저의 개인적인 습관은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도 바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괜히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책들을 이것저것 뒤적거리며 뜸을 들입니다. 두어 시간 그렇게 딴 짓을 하다가 겨우 첫 문장을 만들고 써내려 가다보면 그만 글이 막힙니다. 그러면 끙끙대지 않고 미련 없이 책상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다음날이나 며칠 후 꼼꼼히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막혔던 글이 의외로 술술 풀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퇴고를 할 때에 저는 몇 번이고 꼭 소리를 내어 읽어보곤 합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문장은 역시 술술 읽히지 않기 때문이죠. 퇴고를 할 때는 자연스러운 문장과 어휘를 쓰려고 많이 노력하지요. 수필에 관한 작법이나 조심해야 할 점은 모두 선생님 강의와 책 속에 있고 저는 제 경험에 비추어 말한 것 뿐 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보고 쉽게 빨리도 쓴다고 말하곤 하는데 저도 나름대로 고민하고 힘들게 쓴 것입니다. 수필은 결코 쉽게 빨리 쓸 수 있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죠. 남이 보기에 붓 가는 대로 쓴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닌 것처럼 말이에요.

 

  좋은 수필 한편을 쓰기 위해 생각을 모으고 감정을 곰삭히는 동안 그리고 글이 되어 나올 때까지 그것은 자신을 담근 질하는 시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시간들이 미욱한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수필 쓰기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200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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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수필들은 2007, 11 월에 펴낸 한향순의 수필집 < 불씨 >에 실렸던 글입니다.

어느것은 쓴지 20년 가까이 된것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내 젊은날의 기록과 느낌이었다고 생각하고

유치하고 객기가 묻어있는 글들이지만 그대로 실었습니다.

앞으로 올릴 글들은 그 후에 여러 잡지에 실었던 글들을 모아 차례대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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