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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기/중남미 여행

페루의 쿠스코 ( 2008, 4 )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8. 24.

 

 

이제 여행 일자의 반이 지나고 드디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는 페루 여행이 시작이다.

 

페루는 대부분 고산지대여서 힘이 들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체력을 아끼느라 우리 일행은 좋아하는 음주도 못하고 조금은 긴장을 했다.

 

처음 브라질을 가기위해 머물렀던 낯익은 리마공항에 들려 세 시간정도를 기다린 후, 비행기를 갈아타고 잉카 유적의 도시인 쿠스코로 향했다.

 

쿠스코는 잉카 제국의 배꼽이라고 할 수 있는 해발 3460미터에 있는 도시이기에 고산 지대에 적응하긴 위한 약을 먹었는데도 약간은 숨이 찼다.

 

제일 먼저 꼬리겐차라는 황금신전에 들렸다. 원래는 태양신을 모시는 신전이었는데, 스페인이 지배하면서 황금은 모두 벗겨가고 이제는 골조와 석상만 남아 있었다.

 

커다란 돌들을 정교하게 다듬어서 쌓았는데 요철 모양으로 다듬어 끼워서 그 오랜 풍랑에도 끄떡없이 견고하게 남아 있었다.

 

 

 

 

 

 

그 다음은 아르마스광장 앞에 세워져있는 산또 도밍고 성당을 둘러보았는데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섬세한 조각을 할 수 있었고

 

훌륭한 건축을 지을 수 있었는지 다시 놀라고 말았다.

 

거리에는 원주민들이 토속 의상을 입고 기념품이나 인형들을 만들어서 관광객에게 팔고 있었는데 몸집도 어린아이처럼 작고 아주 많이 늙은 할머니가 있기에

 

나이를 물어보니 나이는 우리보다 훨씬 적었다. 그나마 우리는 축복받은 민족이라며 자위하며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코스는 삭사이만과 켄코였는데, 삭사이만은 커다란 돌들을 높게 쌓아놓아 적들의 침입을 막는 남한산성 같은 역할을 했다는데

 

그 큰 바위들을 어떻게 그리도 정교하게 쌓아 놓았는지 정말 놀랐다.

 

 

잉카의 특징인 석조 기술은 그 정교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9mx5mx4m 크기에 360톤이나 된다는 거석은 바퀴나 쇠,

 

문자가 없었던 잉카에서 어떻게 운반하고 축조하였는지 놀라울 뿐이다.

 

 

성벽 위에 올라서면 쿠스코의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잉카 사람들의 세계관은 우주를 크게 하늘, 지상, 지하 셋으로 나누고 그 각각을 콘돌, 퓨마, 뱀으로 상징하였다 한다.

 

지구의 중심인 쿠스코를 퓨마에 비유하면 삭사이만은 그 머리에 해당되기 때문에 지형적으로 쿠스코의 현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며

 

유적 뒤쪽에 있는 커다란 자연석 지하로부터는 쿠스코 중심 대성당 등에 이르는 미로 같은 지하도가 연결돼 있다고 한다. 

 

 

그리고 켄코는 그 시대에 죽은 사람을 미이라로 만들거나 아픈 사람을 수술하던 장소였다.

 

커다란 바위사이를 헤집고 동굴처럼 생긴 곳으로 들어가니 공기에 찬 기운이 돌고 이상하게도 바위들은 얼음처럼 찼다. 아마도 그런 조건 때문에 인체가 상하지 않게 수술을 할 수 있었나보다.

 

케추아어로 미로를 뜻한다는 켄코는 삭사이만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제례의 장소로 큰 바위를 깎아서 만든 유적이다.

 

퓨마가 조각된 6m의 거석에는 제물의 피가 흘러가도록 도랑이 나있고 의자 역할을 했다는 벽이 반원형으로 퍼져있다.

 

지그재그나 번개 모양으로 홈이 파진 돌에 제물의 피와 술을 섞어 흘러 보내서 왼쪽으로 흐르면 풍년과 행운이 오고 오른쪽으로 흐르면 그 반대가 된다고 점을 쳤다 한다. 

 

바위 뒤에는 반 동굴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왕이 앉았었다는 왕좌가 있고 사람을 제물로 바쳤던 곳이라는 제단도 보인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탐보마차이라고 바위틈에서 물이 시원하게 쏟아지는 장소로 잉카인들이 목욕을 하던 장소라고 한다.

 

“성스러운 물”이라는 뜻의 탐보마차이는 쿠스코에서는 제일 높은 곳에 있었는데, 벌써 고산증세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두통을 호소하며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하는 것을 보니 슬슬 겁이 났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우리는 우루밤바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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