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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기/중남미 여행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8. 24.

 

 

 

 

 

 

우루밤바로 이동하여 우리가 묵을 숙소로 들어갔는데 호텔정원이 너무나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서양식 호텔이 아니라 옛날에 수도원이었던 곳을 개조하여 만들었다는데 구조도 민속풍인 디귿자로 지어 가운데와

 

앞마당 뒷마당을 예쁜 꽃밭으로 만들었다.

                             식당에서도 식사를 하는 동안 노래하는 사람들이 페루의 민속 악기를 들고 나와 연주하며 노래를 들려주었다.

 

 

 

또한 노래가 끝나자 안데스의 플루트(Quena)를 꺼내 입에 대더니 이윽고 조용한 가락이 흐르기 시작한다.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 )라는 제목으로 사이먼과 가펑클이 불러 유명해진 이 노래는 원래 페루민요(콘도르는 날아간다)로 철새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한다.

그저 안데스 사람들에게 영매로서 신성시되는 콘도르에게 당부하는 일종의 진혼곡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너무 이색적인 분위기에 홀딱 반해서 황홀하기만 했는데, 나중에는 가는 곳마다 반복하여 듣다보니

그 좋던 음악이 조금은 시들해졌다.

 

 

이곳에서도 잠을 설치면 어쩔까 걱정을 했는데 쿠스코보다는 해발이 낮아서 그런지 푹 잠을 자고 일어나니 어찌나 햇볕이 강렬한지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아침을 먹고 시간이 남아 남편과 호텔을 나와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였는데 집집마다 담 위에 알로에나 여러 가지 선인장을 심어 철책을 대신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선인장도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노란 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조금 내려오니 오이안타이 탐보역이 나왔다.

역에 가까이 다가가니 기차가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무서운 기세로 언덕 위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궁금해 했더니

언덕위에 주차되어 있는 버스에 먼저 자리를 잡으려고 달려가는 인파였던 모양이다.

드디어 열차가 도착했는데 치안 때문인지 일일이 여권을 대조하며 기차에 태웠다. 기차가 마추픽추 역에 도착하자

다시 우리는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대관령 같은 꼬불꼬불한 열세굽이 산길을 돌아 드디어 그곳에 올랐다.

 

 

호텔 앞에 유적 입구 사무소에서 입장권을 내고 경사면으로 난 길을 따라 200미터 정도 걸으면 곧 서너 채의 주거지를 만나게 된다.

초가지붕을 얹어 복원해 놓은 오두막 전망대다. 주거지 사이를 비집고 돌아 나오니 홀연 마추픽추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신비로운 파노라마의 장면 앞에서 심장은 고동치고 감격으로 숨이 막힐 것 같은 경외감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 동안이나 이곳을 보려고 꿈꾸어왔던가? 이제 그곳이 바로 눈앞에 있다.

아름답고 신비한 불가사의의 공간에서 이곳을 거닐었던 옛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다.

 

 

 

 

 

예일 대학 교수 하이럼 빙험(Hiram Bingham)은 1911년 7월 24일, 12세 인디오 소년의 안내를 받아 400년 넘게 잡초에 덮여 있던 폐허를 발견한다. 지금부터 불과 90년 전의 일이다.

 

 

원주민 사이에는 오래 전부터 알려 졌던 곳이라 발견이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으나 그로 인하여

세계 유산이자 페루의 대표적 건축 유적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마추픽추는 쿠스코에서 114km 떨어진 우루밤바 강을 따라 내려간 지점에서 400m를 올라간 산 위에 있으며 해발 2,280m에 있는 면적 5평방km의 잉카 유적지이다.

 

 

<잉카 최후의 도시>나 <전설의 도시>라고도 하고 하늘에서만 볼 수 있다 하여 <잃어버린 공중 도시>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4W(Why, What, Who, When)의 불가사의를 가지고 있다.

“누가 언제 왜 이 도시를 이 높은 곳에 어떻게 건설했고 언제 왜 갑자기 사라 졌는가?” 라는 수수께끼는 바로 500여년에 불과한 이 유적이

4,000년을 넘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필적하는 세계의 유산으로 지목되는 이유인 것이다.

출토된 물건들로 보아 1438년부터 1531년 사이의 잉카 도시였던 것은 확실한 모양이다. 유적의 일부분이 2,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추론도 있다 하나

잉카시대 이전부터 원주민들의 도시였는지는 몰라도 그 외에 알려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마추픽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이다. 커다란 돌을 다듬는 솜씨가 상당히 정교하다.

 

각 변의 길이가 몇m나 되고 모양도 제각각인 돌들을 정확하게 잘라 붙여서 성벽과 건물을 세웠다.

 

 

종이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단단히 붙어 있다. 젖은 모래에 비벼서 돌의 표면을 매끄럽게 갈았다고 한다.

 

가파른 산비탈에 계단식 밭을 만들고 여기에 배수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마추픽추의 건축물에서 가장 특이하고 기이한 형태로 모든 건물에 벽감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벽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모두 사다리꼴 형태로 위보다 아래가 넓은 안정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큰 것은 미라나 사제들의 물품을 보관하는데 사용되었고 작은 것들은 가정의 우상이나 일반 물건을 놓았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확실하게 그 용도가 규명되지 않았다.

 

 

 

 

 

마추픽추에서는 몇 가지 수수께끼를 발견할 수 있다.

 

도시의 관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앳된 여성들의 미라가 땅에 묻혀 있지 않고 발견되었다.

 

그리고 마추픽추의 도시 인구는 약 1만 명이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남성의 미라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남자들은 스페인과의 전쟁에 나가 모두 죽어 버린 것일까? 라는 의문점을 남기며 여러 가지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흔히 엽서의 그림이나 선전용으로 나오는 마추픽추의 사진은 멀리 보이는 뾰족하고 웅장한 산 밑의 마을 모습인데,

 

그 뾰족한 산은 <와이나 픽추>인데 젊은 봉우리라는 뜻이며, 마을이 있던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와이나 픽추에도 계단식 밭과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어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우리는 시간이 없어 아쉽게도 발길을 돌렸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산 그림자가 내려오자 우리는 아쉬움을 남기며 늙은 봉우리를 뒤로하고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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