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여행기/중남미 여행

떠다나는 갈대섬 우로스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9. 6.

 

 

파란 물빛과 하늘빛이 너무 닮아 마치 하늘을 품고 있는 호수 같았다.

 

수평선 멀리 보이는 안데스산맥의 연봉들이 없었다면 어디까지가 호수이고 어디부터 하늘인지 얼른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남미 페루에 있는 티티카카호수는 해발 3800m상에 있는데, 지구상에서 하늘과 제일 가깝고 또한 바다같이 넓은 호수이다.

 

잉카제국의 건국신화에 의하면 세상의 첫 번째 태양빛이 티티카카에서 내려와 창시자인 ‘망코 카파크’가 강림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는 이곳을 보기 위해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던가.

 

비행기를 열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쿠스코에서 버스로 해발 4300m가 넘는 고지를 10시간이나 달려서 푸노로 왔고 고산증세에 시달리며 온밤을 지새웠다.

 

그래도 아침이 되자 씩씩하게 일어나 푸노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삼십분쯤 달리니 크고 작은 갈대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섬들은 <토토라>라는 갈대를 엮어 만든, 호수에 떠다니는 인공 섬이라고 했다.

 

“섬이 어떻게 움직이며 그런 곳에 어떻게 사람이 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 때문에 이번 남미여행에서 가장 보고 싶어 했고, 기대를 한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막상 <우로스>섬에 도착하여 우루족의 사는 모습을 보자 주제넘게도 연민의 감정이 마구 일었다.

 

쏟아지는 자외선을 피할 방법이 없는 그들의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려 주름투성이였고 질퍽거리는 갈대밭을 맨발로 다녔다.

 

갈대를 엮어서 만든 섬은 습기 때문에 금방 썩어버려서 자주 갈대를 꺾어 그 위에 덮어야만 삶의 터전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살짝 들여다본 집안에는 가재도구도 별로 없고 집이나 학교도 모두 갈대를 엮어 지었으며, 그들의 유일한 운송수단으로 쓰이는 카누 역시 갈대를 엮어 만들었다.

 

우루족은 잉카인인 케추아족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들은 500년 전에 외적을 피해 티티카카호수로 쫓겨 와서 배 위에서 살다가 갈대 섬을 만들었는데, 옛날에는 감자나 갈대의 어린 순을 먹으며 연명했다고 한다.

 

지금은 관광수입과 육지에 나가있는 동족들의 도움을 받아 대부분 문물교환을 하며 생활하는데 아직도 주민들은 <토토라>의 어린 순을 잘라 먹기도 한다.

 

그러나 호수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제거할 수가 없어 주민 대부분은 관절염이나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적인 주거생활을 고집하고 있었다.

 

 

세계 구석구석까지 밀려드는 문명을 외면하고 거부하며 원색의 민속의상을 입고 아직도 원시적인 삶을 이어나가는 그들이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갈대 섬은 필요에 따라 칼로 잘라 분리하거나 갈대 뿌리를 덧붙여 영토를 넓힐 수도 있어 지금은 섬이 약 40여 개로 늘었단다.

 

그들의 생업은 물고기를 잡아 팔거나 물새 사냥을 해서 곡식과 교환을 하는데, 요즘은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토산품등을 만들어 팔거나 볼거리를 제공하여 그나마 생존에 필요한 수입원을 만든다고 했다.

 

 

 

 

 

 

 

 

 

두어 군데 갈대 섬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들른 섬에는 유난히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빨강 노랑 파랑 등의 원색의 민속의상을 입었는데 수줍어하는 눈망울이 어찌나 순수하고 맑은지 몰랐다.

 

우리는 오기 전에 얻은 정보대로 아이들에게 주기위해 초콜릿이나 사탕 등을 사가지고 와서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선물을 받고 좋아서 넓지 않은 섬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오십여 년 전, 가난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어느 사이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일렬로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구슬픈 가락의 전통 민요를 몇 곡 부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우리 동요 ‘곰 세 마리’와 ‘오빠 생각’을 부르고 ‘아리랑’도 부르는 것이 아닌가.

 

 어설픈 발음이었지만 세계 속의 오지인 티티카카호수의 갈대 섬에서 아리랑을 듣다니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세계 구석구석까지 밀려드는 문명을 외면하고 거부하며 원색의 민속의상을 입고 아직도 원시적인 삶을 이어나가는 그들이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갈대 섬은 필요에 따라 칼로 잘라 분리하거나 갈대 뿌리를 덧붙여 영토를 넓힐 수도 있어 지금은 섬이 약 40여 개로 늘었단다.

 

그들의 생업은 물고기를 잡아 팔거나 물새 사냥을 해서 곡식과 교환을 하는데, 요즘은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토산품등을 만들어 팔거나 볼거리를 제공하여 그나마 생존에 필요한 수입원을 만든다고 했다.

 

 

두어 군데 갈대 섬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들른 섬에는 유난히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빨강 노랑 파랑 등의 원색의 민속의상을 입었는데 수줍어하는 눈망울이 어찌나 순수하고 맑은지 몰랐다.

 

우리는 오기 전에 얻은 정보대로 아이들에게 주기위해 초콜릿이나 사탕 등을 사가지고 와서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선물을 받고 좋아서 넓지 않은 섬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오십여 년 전, 가난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날로 늘어나는 우리나라 관광객을 의식해서 어느 선교사님이 혼신을 다해 가르쳤다고 하지만, 피나는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우리는 감격해서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그들의 손을 잡고 일일이 악수를 했다. 마지막으로 그들과 섞여 기념촬영을 하며 잠시 우리도 갈대 섬에서 티 없는 동심으로 돌아간 듯 착각 속에 빠졌다.

 

 

 

지구촌에는 수많은 인종들이 아직도 여러 가지 전통적인 생활방식대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우르족도 하늘이 내려준 자연 속에서 최소한의 물질을 소유하며 갈대 섬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복잡한 근심이나 불안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육지에 나가 교육을 받고 있는 동족들보다 그들의 행복지수는 훨씬 높다고 한다.

 

물위에서 검소하게 생활하면서도 불편한 삶을 즐기는 그들의 낙천적인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조건은 문명이나 물질과는 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