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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기/중남미 여행

아즈텍, 마야문명의 멕시코 (2008, 4 )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9. 24.

 

 

마야와 아스텍 문명의 도시 멕시코시티

  어제 밤늦게 리마를 출발하여 오늘 새벽에 드디어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멕시코시티의 인구는 서울의 두 배 정도인 이천만이고,

공해가 심해서인지 도시 전체가 뿌옇게 가라앉아 있었다.

우리는 우선 테오티와칸이라는 마야 유적지로 향했다.

 

 

멕시코시티의 소깔로 광장은 원래 기반석이라는 뜻인데,

사방이 평방240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광장 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레알 광장으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소깔로 광장으로 불리며 그곳에서 각종 집회나 행사를 열고 있다.

 광장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국립궁전과 소깔로 성당,

스페인이 침략하기 전인 아스텍 문화의 발굴지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지반이 점점 가라앉는다는  도심의 소깔로 광장

 

 

눈에 보이는 테오티와칸은 작열하는 태양 밑에 펼쳐진 광활한 잔디의 들판이다.

한가운데 폭이 45m나 되는 넓은 길이 북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쳐 나가고

그 끝에 달의 피라미드가 작은 동산같이 멀리 바라다 보인다.

길 중간쯤 오른 편에 있는 해의 피라미드는 좀 더 앞 쪽에 솟아 있다.

그러나 이 넓은 벌판에 비해 두 개의 피라미드는 너무 거리가 멀어 아직은 크다는 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힘들게 정상에 올라 보니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최고의 신을 모신 목조의 신전이 있어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의식이 행해졌다고 한다.

그곳에서 내려와 달의 피라미드 까지는 1Km가 채 안 되는 듯하고 걸어서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달의 피라미드 앞에는 광장이 있고 그 주위로 4층으로 된 기단이 열 개 정도 둥글게 둘러 서있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도시 로터리에서 보는 분수대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도 의식을 행하던 제단인 듯싶었다.

거리 곳곳에는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는데 조잡한 모양에 부르는 값도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형상의 기념품들이 마야 문명의 잔인함을 다시 일깨워 주는 듯하였다.

 

 

 

 

 

 

 

 

 

 

  '사자(죽은 자)의 길'이라고 불리는 중앙의 도로로 다시 나와 걷기 시작한다.

폭이 45m나 되는 포장된 이 대로는 해의 피라미드 바로 정점에

1년에 두 번 태양이 오게 하고 저녁에는 정면으로 해가 지도록 하기 위하여

동쪽으로 틀어서 축조되었다고 한다.  

처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도로 양쪽의 건물 터를 왕의 분묘라 생각했고

또 길에서 많은 사람의 유골이 발굴됐기 때문에

사자(死者)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드디어 태양의 피라미드 앞에 당도한다.

밑변의 길이가 225m, 높이가 65m인 최대의 유적은

 이집트에 있는 쿠푸 왕과 카푸라 왕의 피라미드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피라미드이다.

또한 뾰족한 이집트의 피라미드 모양과 비교하면 무게중심이 밑에 있어 그만큼 안정적으로 보인다.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와는 달리 분묘가 아니고 신전(神殿)이다.

이곳에 살았던 부족들은 우주 존재에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사람을 제물로 공양하였고
때로는 가뭄에 비를 빌기 위해 인신(人身)을 희생하여 피와 심장을 바쳤다고 한다. 

 

테오티와칸을 나와 돌을 다듬어서 기념품을 직접 제작하여 파는 매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용설란을 키우고 있었는데 우리가 기대를 걸었던 멕시코의

특산물인 데킬라라는 술은 용설란의 밑 둥지를 자르면 샘물처럼 즙이 고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즙을 이용하여 만드는 술이라고 한다.

페루에 여행할 동안은 고산지대인데다 체력소모 때문에 금주를 하고 있었지만

멕시코에 와서는 꼭 데킬라를 맛보겠다고 벼르던 참이었다.

더구나 우리 일행들은 그동안 친숙해져서 식사 때가 되면 서로 술을 사겠다고 나서곤했다.

그날 밤에도 상계동에서 오신 분들이 데킬라를 사겠다고 하여 밤거리를 누비며 이국의 정취를 즐겼다.

 

오후에는 소깔로 광장과 검은 성모님이 발현하셨다는 과달루페 성당을 찾았다.

“스페인이 아스텍을 점령한지 10년 후인 1531년 12월 9일 신앙심이 두터운 원주민 후안 디에고는 멕시코

북쪽 데뻬약 언덕에서 금으로 장식한 푸른 외투를 입은 성모 마리아를 본다.
성모는 이 언덕 위에 성당을 세우도록 주교에게 말하라고 이른다.

디에고는 어렵게 주교를 만나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전하지만 처음에는 그 사실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 날 저녁과 이틀 후에 다시 그에게 나타난 성모는 추운 한 겨울에 필 리가 없는 장미를 한 다발 그에게 증거로 내어 준다.

디에고가 입고 있던 용설란 섬유로 만든 값싼 망토에 싸들고 온 장미를 풀어보던 

주교는 12월에 핀 장미보다도 그 망토에서 더 큰 기적을 발견한다.

그 천에는 검은 머리 갈색 피부의 성모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던 것이다.

그때서야 주교는 그의 이야기를 믿게 되고 1533년 떼뻬약 언덕에 최초의 성당을 건설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였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7년 동안에 8백만 명의 원주민이 개종을 하였다고 한다.

교황청은 이곳을 3대 성지 중 한곳으로 인정하고 모든 순례자들이 볼 수 있도록 디에고의 망토를 전시해 놓았다.

그러나 멕시코시가 호수를 매립한 땅이라 소깔로의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지반 침하가 일어난 데다 1985년 지진으로 인하여 붕괴할 위험성이 커져 좌측에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성당을 세우게 되었다.

매년 12월 12일은 “과달루페 성모 대축제의 날”로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신자수가 1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주기 위해 발현하신 과달루페 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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