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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포토기행(길에서 길을 생각하며)

바람과 불의 나라

by 아네모네(한향순) 2018. 9. 29.



바람과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

 

                                                                                                                                                                한 향 순

 

지루한 비행 끝에 두바이를 거쳐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의 공항에 내렸다.

그런데 단체 입국비자가 나오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기계에 매달려

 개인비자를 발급받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한참 후에야 밖으로 나오니 초조하게 기다리던 가이드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캅카스 산맥의 남동부에 있는 아제르바이잔은 북쪽으로 러시아, 서쪽으로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남쪽으로 이란과 접해 있으며,

동쪽은 카스피 해를 끼고 있다. 인접해 있는 조지아와 아르메니아가 그리스도교 국가인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주민 대부분이 터키어를 쓰는 이슬람국가이다.

이슬람교도 중에도 강경한 시아파가 많다고 해서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은 정이 많은 것 같았다.






아제르바이잔은 7세기부터 아랍의 지배를 받았다. 16세기부터 근 3세기 동안은 페르시아와 오스만튀르크가

아제르바이잔을 지배했다. 그러면서 이슬람이 자연스럽게 이 땅으로 흘러들어왔다. 19세기 초반에는 러시아가 이곳으로 진출했고

아제르바이잔은 1991830일 소련이 붕괴되자 드디어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 카스피해에서 원유가 발견됐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때부터 세계적인 산유국(産油國)이 되어 갑자기 성장하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바쿠의 시내로 향하자 황량한 땅에 모래바람이 뿌옇게 불었다. 바쿠가 왜 바람의 도시인지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아제르바이잔이 불의 나라라고 불리는 것은 땅에서 분출한 천연가스에 불이 붙어 치솟아 오르는 모습 때문이다.




바쿠는 12세기 즈음에 실크로드의 중요한 중개무역 장소였다. 11세기에 건립된 첨탑과 성벽,

12세기에 지어진 메이든 탑과 목욕탕, 15세기의 시르반샤 궁전 등 구시가지 전체가 중세도시의 위용을 간직하고 있다.

 원통형 모양의 독특한 탑인 메이든 탑은 성곽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다.

 탑 주변부터 고성까지 이어진 길목에는 옛날 상인들이 물건을 거래하던 장소부터

그들이 숙소로 머물던 카라반사라이까지 실크로드의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15세기에 지어진 시르반샤 궁전은 당시 수도였던 세키에서 지진이 나자 바쿠로 옮겨와서 다시 지은 것이다.

 왕의 집무실과 접견실, 연회장과 거주 공간, 사원과 첨탑 등이 조밀하게 들어서 있다. 궁전 건물 벽에는 총탄의 흔적이 선명하다.

18세기에 제정러시아 해군의 공격에 성벽이 파괴됐는데 그때를 잊지 않기 위하여 일부러 남겨놓은 것이다.



구 시가지를 벗어나면 현대 바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프레임타워가 있다.

일명 불꽃타워로 알려진 이곳은 세 개의 건물이 타오르는 불꽃 형상으로 이뤄진 건물이다.

이 건물은 6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2013년에 완성됐다. 건물 모양과 조명이 한데 어울려 수도 바쿠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제 바쿠는 바람의 도시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산유국임을 자랑하는 불의 도시로 변모한 것이다.





다음 여정은 배화교의 신전인 아테쉬카 신전으로 향했다. 사원 정면 위에 아후라 마즈다를 상징하는

날개 펼친 새를 지닌 사람의 모습과 `바른 생각, 바른 행동, 바른 말'이라는 페르시아어가 새겨져 있었다.

사원 안쪽 유리벽 뒤에는 불의 사원답게 불이 활활 타고 있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 불은 470년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한 번도 꺼뜨리지 않은 불이라고 한다.

박물관에는 창시자인 조로아스터의 초상화를 비롯해 그들이 박해받던 모습을 마네킹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튿날은 고부스탄의 암각화를 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 고부스탄은 바쿠에서 카스피 해를 따라 남쪽으로 64지점에 있다.

암각화 지구는 커다란 바위를 무질서하게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곳 바위에는 카스피해 연안 동굴에서

생활하던 인류의 조상이 40,000년에 이르는 바위예술의 증거가 되는 암각화 6천여 점이 보존돼 있다.

또한 이곳에는 인간이 살았던 동굴, 정착지와 묘지유적도 있었다.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 무더기에 도착하니 열기가 더욱 뜨겁다.

우리는 범상치 않은 바위들이 위용을 자랑하며 예술품처럼 서있는 곳을 향해 올라갔다.

글자가 만들어지기 이전 선사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 암각화 유적 속으로 점점 빠져 들어갔다.




고부스탄을 떠난 우리는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지였던 세키로 향했다.

세키는 캅카스산맥 남쪽 능선에 포근하게 자리하고 있다. 인구 9만 명의 작지 않은 도시는

낮은 산과 짙은 녹음이 둘러싸고 있어 거대한 숲 속에 들어선 듯 평온하고 싱그럽다.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마을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세키 여행은 도심 동쪽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칸의 여름궁전부터 시작한다.


궁전은 1762년 칸의 집무실로 건축됐는데 주변으로는 겨울궁전과 가족 거주지, 하인의 집 등이 있었다고 전한다.

물론 지금은 여름궁전만 남아 있다. 궁전은 규모가 작지만, 극도의 화려함을 경험할 수 있다.

층마다 중앙에 창문이 7개씩 있는 건물의 정면은 청록색과 황토색, 하늘색의 기하학적 무늬와 꽃 그림을 표현한 타일로 덮여 있고,

창문 양쪽의 입구와 테라스는 반짝이는 은빛 아치로 설계됐다.




벽면이 온통 다양한 색깔의 화려한 꽃과 나무, 화병, 기하학적 무늬로 덮여 있다.

내부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섀배캐’(Sebeke)라 불리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름다운 문양이 창에 담겨 있다. 어두운 실내에서 바라보는

 창문의 화려함에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그러나 실내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유감이었다.

세키에는 여름궁전뿐 아니라 아직도 호텔로 영업을 하고 있는 카라반사라이가 건재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실크로드의 교역지인 세키에서 민속인형을 사서 배낭에 넣으며

그 시절의 여인들은 무엇을 제일 사고 싶어 했을까 궁금해졌다.

 이제 불의 나라인 아제르바이잔을 떠나 조지아로 갈 것이다.

코카서스 산맥 아래 나라들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 여행작가>  2018년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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