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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포토기행(길에서 길을 생각하며)

눈물의 기도

by 아네모네(한향순) 2019. 2. 12.


아르메니아 눈물의 기도

    

                                                                                                                                                                                             한 향 순

 

드디어 조지아를 떠나기 위해 아르메니아 국경지대로 이동했다.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모든 짐을 가지고 내린 후 도보로 200m 가량 이동하여 출입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조지아를 들어올 때보다는 수월하게 국경을 지나 아르메니아로 넘어왔다.


아르메니아는 북쪽과 동쪽으로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 서쪽으로 터키, 남쪽으로 이란과 접해 있는데,

대부분 평균고도가 해발 1,000m에 이르는 산악지대이다.

북부에는 캅카스 산맥이 걸쳐있고 중동부에는 바다같이 넓은 세반 호수가 있다.

나라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경상도 정도이고 인구도 300만 정도의 작은 나라이지만,

고대 아르메니아는 한때 로마 제국에 대항할 정도로 강성했고

긴 역사는 외국의 지배와 이에 대항한 독립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오랜 세월 아르메니아는 외세에 정복당한 고난의 시기를 거쳤다.

긴 역사 속에서 강대국의 핍박으로 인한 대규모 이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르메니아에 살고 있거나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 인들은 지금까지 고유한 언어와 문화, 전통을 보존해 오고 있다.

마치 한국이 수천 년에 걸친 외세의 침략에도 불국하고 한국어와 한글을 지켜온 것처럼 말이다





점심 식사 후, 우리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아그파트 수도원이었다.

이 수도원은 10세기에 시작하여 13세기까지 비잔틴 양식으로 지은 중후한 건축물이다.

이곳은 전쟁 중에 적을 방어할 목적도 겸해 카이안 요새로도 쓰이기도 했다.

또한 중요한 문서가 필사되고 보관 되었던 곳이기도 하며 서고에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의 건물이 땅속으로 들어가 있다.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자 우리의 현지 가이드의 긴 설명이 이어졌다.

그녀는 한 번도 한국에 온 일이 없지만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뿐 아니라 한글을 배워서 글도 읽을 줄 안다고 하였다.

더구나 얼굴도 예쁘고 상냥하여 여행객들에게 귀여움을 받았다.






다음은 아르메니아의 진주라 불리는 세반호수로 향했다. 아라라트산의 화산 폭발로 생겨난 세반은

 해발 1,800m에 위치한 큰 호수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원에 자리하고 있다.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인 아르메니아에게는 바다보다 더한 보석이다.

여행 중 고된 몸을 이끌고 바라보는 호수는 특별한 말이 없어도 위로가 되는 오랜 친구와 같다.


세반나반크는 세반교회라는 뜻이며 처음에 세 개의 교회와

여러 부속건물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두개의 교회만 남아 있다.

이곳은 아쇼크 1세의 딸인 마리암공주가 요절한 남편을 기리기 위해 교회를 지어 기부한 곳으로

당시 지은 많은 건물 중, 지금은 성 사도교회와 성모 마리아교회가 남아 있는데 이 두 교회는 건축양식이 아주 비슷하다.

 애초 교회를 지을 때 이곳은 호수 가운데 섬이었으나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튿날은 아라라트산을 보기 위해 터키와의 접경지대로 갔다.

아라라트 산은 터키 동부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란 등 국경에 걸쳐 있으며,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묻혀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비의 산 이다.


히브리인들은 티그리스강 상부의 아르메니아 고원 지대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있다고 믿었다.

대홍수 이후에 노아가 아라라트 산에 도착했다는 기록은 히브리인들의 전래 믿음에 의한 것이다.

터키 동북부의 이그디르 지방에 있으며, 이란 국경과 아르메니아 국경 접경지대이다.

산정은 만년설로 덮여 있으며 휴화산이므로 분화구의 모습이 남아 있다.


아라라트 산이 있는 지역은 옛날부터 아르메니아 땅이었다.

아마도 노아의 방주가 아라라트 산에 정박한 때부터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약소국인 아르메니아는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터키가 패전국이 되어 영토를 분할하는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영유권을 요구하였고 터키는 아라라트 산의 영유를 요구하였다.




산을 볼 수 있는 곳에는 아담한 수도원이 보이는데 바로 코르비랍 수도원이다.

코르비랍은 "깊은 우물"이라는 뜻인데 4세기경 아르메니아의 종교 지도자이자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성 그레고리오가 지하 감옥에서 13년이나 투옥되었던 곳이다.

이 수도원은 6세기경 처음 지어졌는데 많이 훼손이 되어 17세기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4세기에 세워진 게르하르트 수도원으로 향했다.

게르하르트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찌른 로마 병사의 창을 뜻하는 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써 현재는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작은 신들이 모여 산다 해도 믿을 만큼,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지만,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줄지어 방문한다.


깊은 산 속, 높은 바위산에 둘러싸인 게르하르트 수도원의 분위기는

절벽 앞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 불교 사찰과 비슷하였다.

아르메니아는 3세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나라답게 관광지 어딜 가나 수도원이 있었다.

게르하르트 동굴사원이 유명한 것은 이 사원의 절반이상이 뒤의

바위절벽 속에 동굴을 파서 만든 건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 길을 돌아 드디어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례반에 도착하였다.

아르메니아인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강제 이주와 학살을 당했다.

전쟁 당시 이들이 적국인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학살로 희생된 인원은 150만 명에 이른다.

이 대학살을 피해 많은 난민이 세계 도처로 흩어졌다. 가이드는 아르메니아 인구는 300만 명에 불과하지만,

외국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은 대략 700만 명에 이른다.”고 말한다.


디아스포라의 슬픈 역사는 예레반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도심을 흐르는 라잔강 서쪽 언덕에는 제노사이드 추모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대학살 50주년인 1965년에 아르메니아인들이 당시 소련 정부에

학살의 인정과 위령탑 건설을 요구하는 시위를 통해 얻어낸 것이다.


한국과 아르메니아는 문화와 삶, 그리고 전통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역경에서 살아남은 역사와 개인의 성취를 존중하는 분위기, 그리고 개방적이고

매우 성실한 국민성에서 우리 민족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케스케이드 전망대가 있는 광장은 온갖 조각품과 미술품으로 가득한 공원이었다.

올라갈 때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올 때는 시내를 굽어보며 내려오는 코스로

이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감상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위해 아르메니아 왕국의 수도였던 에치미아진을 선택했다.

이곳에는 아르메니아 정교의 본산이자 세계 최초의 성당인 에치미아진 성당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즈바르트노츠 성당 또한 빠질 수 없다.

그 오랜 역사 속에서 아르메니아는 주변국들의 영향을 받으며 번영과 쇠퇴를 반복하는 부침을 겪었다.


동으로는 아제르바이잔, 서로는 터키, 남으로는 이란, 북으로는 조지아가 아르메니아 땅을 감싼다.

 현재 뚫린 국경은 조지아와 이란 둘뿐이다.

터키와는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의 씻을 수 없는 끔찍한 기억이 한 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생생히 남아 있다.

아제르바이잔과는 오랜 영토분쟁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코카서스 3국은 사람과 신이 오랜 시간 동안 만나는 신화의 땅이었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곳. 고대와 현대까지의 긴 역사 속에서

그리스, 로마, 몽골, 오스만터키, 유럽, 페르시아, 러시아 등의 각축으로 수많은 상처를 안고 있는 나라.

로마 기독교보다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초기 기독교 신앙을 지켜온 나라였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신앙은 생활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2019년 1,2월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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