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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포토기행(길에서 길을 생각하며)

와인과 신화의 땅 조지아

by 아네모네(한향순) 2018. 11. 22.



와인과 신화의 땅 조지아

 

                                                                                                                                                                                                            한 향 순

 

아제르바이잔에서 트렁크를 질질 끌고 200미터쯤을 올라가서 힘겹게 조지아 국경을 통과한 뒤, 해발 800m에 자리 잡은 시그나기로 향했다.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도시였던 시그나기는 아담한 중세도시로 여정에 지친 나그네를 반겨주었다.

 조지아는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이다.

 '그루지야'로 알려졌던 이 나라는 러시아식 이름을 버리고 이제는 '조지아'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불린다.

조지아는 유구한 역사와 함께 오랜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다. 4세기에 문자가 만들어졌고, 5세기부터 조지아 특유의 문학이 나타났다.



조지아에서 첫 번째 들른 곳은 시그나기에 있는 동굴 와이너리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물론이고 최초의 와인 생산국이란 조지아는 와인의 나라란 별명이 잘 어울린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아리에 포도주를 담그는 전통 기법을 사용한다. 조지아인 들에게 와인 담그는 일은

신이 부여한 신성한 의무였고 포도송이는 신에게 바칠 신성한 제물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조지아 여행 내내 값싸고 질 좋은 와인을 마실 수 있었다.




                                                                   조지아의 뿌리는 역사적으로 매우 깊고 그들의 문화유산 역시 풍부하다.

 중세에 강력한 조지아 왕국을 건설했으며, 최고의 번영을 누렸던 시기는 10~13세기였다.

그 후 오랫동안 터키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19세기에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조지아 민족의 역사는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전쟁으로 점철된 고난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고난과 역경을 춤과 노래 그리고 예술로 승화시키며 자신의 땅과 종교, 역사를 지켜왔다.

우리는 시그나기의 아기자기한 시내와 성벽들을 둘러본 후, 수도인 트빌리시로 향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는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도시이다. 1500년의 신화가 간직된 고도의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은 정겨웠고,

수많은 역사적 부침이 있는 나라인데도 사람들은 친절했다. 상처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그 도시만큼이나 순박했다.

트빌리시는 현재와 과거가 므츠바리강을 중심으로 공존한다.

우리는 트빌리시에 도착하자 도심을 굽어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요새 위로 올라갔다.

언덕 위에 큰 동상이 눈에 띠는데 바로 칼을 든 조지아의 어머니상이다.






트빌리시는 코카서스 관광의 중심도시답게 강을 따라 고대의 유적들이 현대의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리칼리 요새와 그 안에는 12세기에 건립한 성 니콜라이 교회가 보인다. 교회 안에는 성서이야기와 조지아의 역사가 프레스코화로 그려있었다.

시내에는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이 극찬한 바크마로라는 목욕탕이 있다. 17세기 실크로드를 오가는 상인들도 이 목욕탕에서 지친 몸을 쉬었다고 한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여행은 초기 기독교 유적을 찾는 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 날은 카즈베기산으로 올라가는 날이다.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다 지루함을 느낄 만할 때

유서 깊은 '아나누리' 성채 앞에 세워주었다. 아나누리 성채는 진바리 호수 색깔과 어울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코카서스 산맥에 위치한 이 성채는 13세기 아라그비 백작의 성이였으나 수도원 성채와 교회가 함께 들어선 복합건물이다.

 성채 뒤, 망루에 오르면 만년설이 녹아 발생된 에메랄드빛 진발리 호수와 성채의 전경은 장관을 이룬다.

코카서스 산맥 중 가장 높은 카즈베기산은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친 죄로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는 고통을 당했던 산이다.

산 중턱에는 게르게티성 삼위일체 교회가 있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카즈베기 산을 배경으로 해발 2170m의 언덕에 세워진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교회(게르게티 성 삼위일체 교회) 조지아를 대표하는 사진에 꼭 등장한다.

장엄한 카즈베기산과 목가적인 교회의 모습은 묘하게도 잘 어울린다.

험한 산 속에 세워져 중요 문화재를 고스란히 지켜낼 수 있었다지만,

가장 중요한 보물은 풍경 그 자체였음을 이곳에 가면 알 수 있다.




카즈베기 산중턱에서 양떼와 구름이 몰려오는 풍경을 감상하며 하룻밤을 묵은 뒤, 바르지아로 향했다.

커다란 바위들을 뚫어서 만든 동굴도시는 마치 터키의 동굴도시와 비슷하였다.

12세기경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조성되었다는데 방이 무려 3천개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3세기경에 지진으로 3분의 2가 무너져서 남아있는 부분은 3분의 1 정도이다.

그 후, 중세 때는 수도원으로 700여 명의 수도자들이 기거했다고 한다.



므츠헤타는 조지아에서 가장 성스러우며 아름다운 도시이다.

기원전 3세기에서 5세기까지 고대 조지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조지아의 수도였다.

므츠헤타는 조지아인들의 발원지이자 정교를 중심으로 고난의 역사를 극복해 온 신앙의 중심지이다.

그러므로 조지아인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므츠헤타에 있는 스베티즈호밸리 성당은 조지아 정교의 총 본산으로서

4세기에 건설되어 15세기에 재건된 오래 된 성당이다.

이곳에는 왕의 대관식이나 장례식도 치러졌으며 조지아 역대 왕들을 안장하던 곳이기도 했다.

본당 지하에는 예수가 처형당할 때 입고 있던 옷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조지아에서 들은 재미있는 일화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 가수가 불러서 히트한 러시아의 민요 백만송이 장미의 사연이다.

이 노래는 조지아의 국민화가 프로스마니에 관한 이야기이다.

1862년 카프카스 산자락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수도 트빌리시로 무조건 상경하여. 간판을 그리는 일을 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프랑스 여행객의 눈에 띄어 그림 실력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정식 그림을 배우지 않은 그의 그림은

원시주의라고 불리며 피카소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나중에는 그의 그림이 유명해지고 그는 재산도 모았다. 1905년 프랑스 여배우 마르가리타 데 세브가 트빌리시에 와서 노래를 불렀는데,

화가는 그 모습에 반해 장미 백만 송이를 사서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남자와 트빌리시를 떠나고 그는 죽을 때까지 그녀를 그리워하며 그녀의 초상을 그렸다고 한다.

역시 낭만과 사랑의 기질이 넘치는 조지아 사람들이다.

 




2018년 11,12월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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