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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여러개의 모습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4. 25.

 

여러 개의 모습

한 향 순

 

  우리 집 근처에는 양재천이라는 작은 개천이 흐르고 있다. 옛날에는 제법 수량도 많고 물도 맑아서 물고기가 살았을 것 같지만 지금은 물이 많이 줄어들고 더러워져서 그저 생활하수가 흐르는 개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저분하던 곳을 얼마 전 도시 정비 사업으로 제방을 쌓고 둑길을 포장하면서 가로등까지 설치해 놓아 인근 주민들의 좋은 조깅 코스가 되었다.

 

 그 길이 그렇게 달라지기 전에는 아파트 사 층인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오가는 둑길만 보일 뿐 개천은 보이지 않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가끔 가까이 지나다 보면 개천은 늘 시커먼 빛깔이어서 몹시 불결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반상회가 있어 맨 위층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해가 지고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는 시각이었는데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고 있자니 둑길의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면서 갑자기 ‘멋진 강’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서 저기가 도대체 어디냐고 물었다. 주인은 내 물음에 의아해 하며 자기는 저 개천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말했다. 마음이 울적할 때 따뜻한 가로등의 불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개천을 보고 있으면 마치 세느강변에라도 와 있는 듯 공상을 하면서 향기로운 차를 마신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탁 트인 창가에는 예쁜 탁자에 의자 두 개가 마주 보며 놓여 있어서 밖을 내다보며 운치 있게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해놓았다. 어쩌면 같은 아파트에서도 위치에 따라 밖의 모습이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있을까 놀랍기만 했다. 그저 우리 집 창을 통해서 내다보이는 것만이 우리 동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이 몹시 부끄럽게 여겨졌다.

 

 얼마 전에 남편과 집 근처에 있는 구룡산에 올라간 적이 있다. 산 가까이 에서 살고 있어도 등산은 오랜만이어서 흙냄새와 나무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맨손으로 산을 오르는데도 이마에는 땀이 배이고 숨이 찼다. 산 중턱에서 약수를 마시고 정상에 오르니 우리 동네가 한눈에 들어오며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서울의 강남 쪽이 지도를 펴놓은 듯 내려다보였다. 수많은 아파트 숲을 더듬어 성냥갑 같은 우리 집을 찾다보니 마치 지렁이 같은 양재천이 보였다. 그것은 우리 아파트 위층 집에서 멋지게 보이던 그 개천하고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능선을 타고 나란히 붙어 있는 대모 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그만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낯선 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이야기로만 듣던 철거민들의 비닐하우스 촌으로 들어선 것이다. 깨끗하고 반듯한 아파트 단지를 길 하나 사이에 둔 그곳의 생활은 마치 전쟁 후 피난민 시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우울해졌다. 그것은 무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찡한 아픔 같은 것이었다. 산을 오르며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우리 부부는 공연히 마음이 무거워져서 그저 묵묵히 걷기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그때의 느낌을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는 갑자기 흥분하면서 도시 정책을 비판하고 그 곳 주민들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그들 속에는 정말 오갈 데 없는 도시 빈민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철거용 딱지’를 얻기 위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면서 그 앞에 서있는 승용차들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곳은 등산객들의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인데도 고급 승용차들이 꽤나 많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친구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무엇엔가 배반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씁쓸해졌다.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은 섣부른 감상이나 어설픈 동정심이 아니었는데도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가 또 내 시각으로만 보고 느끼고 그들의 생활을 성급하게 헤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대개의 사람들은 어쩌면 자기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을 볼 수 있으며 그런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산동네의 모습을 보고 우울해했던 것도 길 건너 아파트촌의 풍요로운 문화생활과 비교해서 궁핍한 그들의 삶이 고달프고 불행하리라고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좋은 아파트에서 산다고 해서 걱정이 없이 모두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 테고, 집 한 칸 없이 궁핍하게 산다고 해서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숲 속의 나무들도 크고 작은 것이 있고, 올곧게 자란 나무가 있는가 하면 용트림을 하듯 구부러진 나무도 있는 것처럼 사람 사는 모습도 여러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늘 내가 좋아하는 시각으로, 내가 편리한 시각으로만 사물을 보려고 한다. 세상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물은 여러 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내 시각이 좀 더 넓어지지 않는 한, 그리고 내가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의 벽을 깨뜨리지 않는 한, 나는 늘 혼자 좋아하고 실망하며 마음 아파하는 일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99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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