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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봄은 정녕 오고 있는가

by 아네모네(한향순) 2021. 3. 29.

 

봄은 정녕 오고 있는가.

             

한 향 순

 

올 겨울은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었다. 겨우내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사람을 움츠리게 하더니

결국은 가족과 친지의 안부를 확인하는 명절도 실종되고 말았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고 기피하는 동안 외로움은 몸집을 부풀리고 사람들은 섬처럼 고립되어갔다.

날씨가 조금 풀렸다는 소식에 가볍게 입고 거리에 나갔다가 떠나지 못한

겨울에게 반격을 당하고 따뜻한 봄을 애타게 기다려본다.

 

산자락의 잔설도 녹이는 촉촉한 봄비가 내리면 삭막하던 나무에도 물기가 오르고 세상만물은 기지개를 켜리라.

나는 가만히 앉아서 봄을 기다리지 않고 봄을 찾아 길을 나설 것이다.

언 땅을 비집고 얼굴을 내미는 노란 복수초도 만나러 가고, 겨우내 쌓여있던 낙엽더미 속에서

뽀얀 솜털을 뒤집어쓰고 올라오는 분홍빛 노루귀도 보러 갈 것이다.

 

 

그렇게 미리 봄을 만나고 반기면 얼어붙은 내마음속에도 따스한 봄기운이 감돌 것 같아서이다.

또한 먼 산의 아지랑이처럼 현기증 나게 노란색으로 피어나는 산수유를 보러 갈 것이다.

산수유는 꽃을 보기 어려운 때에 노란 꽃망울을 터뜨려 봄이 왔음을 알려 주고,

겨울을 이겨내고 첫봄을 알린다고 해서 시춘목(始春木)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른 봄 산에 올라가 찬찬히 관찰해 보면 산수유나무는 생강나무에 비해서

작은 꽃자루가 더 길고 꽃잎이 뒤로 발랑 젖혀있다.

또한 산수유나무는 식재하는 나무이기 때문에 깊은 산 속에서는 잘 볼 수가 없고,

이른 봄 산 속에서 알싸한 향기를 내며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은 대부분 생강나무이다.

 

 

경기도 이천 백사면 원적산 근처에 가면 어린 묘목에서부터 오백년 가까이 된

산수유나무 18천여 그루가 심어져 있는 산수유나무 군락지가 있다.

그 속에서 반나절쯤 걷다가 오면 내 몸과 마음에도 노란 봄물이 들 것 같다.

산수유는 이른 봄 다른 나무에 앞서 잎이 나기도 전에 서둘러 노란 꽃을 피우며

겨우내 앙상했던 나뭇가지를 장식한다.

 

노란 산수유 꽃은 하늘을 수놓는 별빛처럼 화사해 보이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어린 옥수수 알을 꿰어 놓은 것 같이 앙증맞기도 하다.

이천 산수유마을 안에는 또한 육괴정 이라는 문화유적지가 하나 숨어 있다.

향토유적 제13호로 지정된 정자 주변에는 500년 이상 된 느티나무 몇 그루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 고풍스러움을 더해준다.

 

 

이 산수유마을의 역사는 약 500년 전,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개혁파인 조광조가 죽임을 당하자

그를 따르던 엄용순 이라는 선비가 이 도립리 마을로 숨어 들어왔다.

그는 뜻을 같이한 다섯 사람들과 함께 육괴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와 함께

산수유나무를 심은 것이 이곳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육괴정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오백년이 된 시춘목을 만날 수 있는데,

그 당시에 심은 나무로 아직도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지금쯤 남녘에는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꽃소식이 전해질 텐데,

우리 사회에는 언제쯤 봄소식이 전해지려는지 애타게 기다리는 대춘부(待春賦)이다.

 

                                                    2021년 <그린에세이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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