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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내 마음의 안나푸르나

by 아네모네(한향순) 2021. 5. 4.

 

내 마음의 안나푸르나

 

                                                                                                             한 향 순

 

멀리서나마 안나푸르나를 꼭 보고 싶었다. 안나푸르나는 네팔의 히말라야의 여러 산중의 하나이며

우리나라 산악인들이 수없이 도전해온 곳의 지명뿐 아니라 어떤 상징적인 단어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느 산악용품 브랜드에서는 당신 마음속의 안나푸르나는 무엇입니까라는

카피를 내놓기도 하여 더욱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다.

안나푸르나는 함부로 오르지 못할 산이기에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목표와 꿈을 의미하기에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리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 동경의 대상이었던 안나푸르나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네팔 여행을 결심했다.

 

마중 나온 현지 가이드를 따라 호텔에 짐을 풀고 관광을 위해 카트만두 시내로 나왔다.

그러나 한국에서 막연히 상상하던 도시와는 전혀 달랐다.

내가 짐작하던 네팔은 흰 설산이 보이는 히말라야 연봉에 둘러싸여서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 속에 티 없이 순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막상 이곳에 와보니 세계각지에서 들여온 폐차 직전의 고물차에서 내뿜는 매연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었고, 아무 때나 울리는 경적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 도시는 5개의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분지여서 매연이 빠져 나가지를 못하고 그대로 쌓여 있다고 했다.

우리는 시내 관광을 하기 위해 옛 왕궁들이 있는 다르바르 광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곳마저 장사꾼들이 점거하여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궁정이나 사원뿐만 아니라 소중한 문화재도 관리를 하지 않아 잘 보존되지 않았고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의 휴식처로 쓰일 뿐이었다.

네팔에 온지 사흘째 되던 날, 우리는 드디어 히말라야의 관문인 포카라로 떠났다.

버스를 타고 꾸불꾸불한 비탈길을 6시간이나 달려 포카라에 도착하니,

그곳은 관광도시여서 그런지 인구도 카트만두 보다는 적고 비교적 깨끗한 편이었다.

 

 

드디어 다음날 새벽, 우리는 캄캄한 어둠을 뚫고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해가 뜨기 전에 해발 1592m에 있는 사랑고트라는 전망대에 올라야

히말라야 설산 위로 올라오는 일출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내려 행여 일출을 놓칠세라 허겁지겁 40분쯤 산을 올라가니 사랑고트 전망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미리 와서 초조하게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흔히 히말라야의 14좌 거봉들은 감히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신들의 땅, 신들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푸르스름한 어둠속으로 보이는 하얀 설산의 고산 준봉들은 정말 침묵하는 신들처럼 경건해 보였다.

 

 

드디어 거대한 산 위의 하늘이 분홍색을 띠더니, 점점 붉은색으로 바뀌고

하얀 설산들은 빛의 향연을 펼치며 황금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마치 하늘이 열리는 듯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내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 속에 이글거리는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저기서 찰칵이는 셔터소리를 들으며 나도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댔다. 

안나푸르나는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인데 제 1봉은 8,000m이상으로

히말라야의 14좌 거봉으로 꼽히며 많은 사람들의 연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안나푸르나의 수많은 봉우리 중에 가운데 우뚝 보이는 곳은

아직 인간의 발길을 거부한 마차푸차레봉 때문이다. ‘마차푸차레는 물고기의 꼬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네팔 인들이 신성시 여기는 곳이기 때문에 아직은 등산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해가 높이 떠올라 산을 내려가야 할 시간인데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 뒤를 돌아보니, 

태양 앞에 전신을 드러낸 안나푸르나가 자꾸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젊었고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건강이 허락 된다면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풍요의 여신품속에 안겨 볼 수 있으련만, 멀리 눈으로만 모습을 담고 아쉬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설산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그 행렬이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

여행의 힘은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는 것 뿐 아니라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자신의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극복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안나푸르나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으려는 목마름으로 여행자들은 오늘도 길 위에서 길을 찾고 있다.

나의 안나푸르나는 과연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며 산을 내려왔다.

 

 

2021년 <여행문화>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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