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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초록의 향연

by 아네모네(한향순) 2021. 5. 4.

 

 

초록의 향연

 

                                                                   한 향 순

 

성급하게 꽃망울을 터트린 봄꽃들이 하나 둘 꽃잎을 떨구고

너무나 짧은 꽃의 산화에 허망함을 느낄 때쯤,

꽃과 이별한 자리에서 연둣빛 잎사귀가 고물고물 나온다.

온 천지가 녹색의 계절이 오면 어느 곳인들 천국이 아닐까마는,

계단식 밭에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차밭으로 달려간다.

 

겨우내 추위를 이겨낸 자리에서 돋는 연녹색 새순들

여린 잎을 일일이 손으로 따서 모은 찻잎을

넓은 솥에 넣고 쉼 없이 뒤집어가며 말리고

손으로 찻잎을 돌돌 말듯 비비는 유념을 거쳐

열기와 손맛, 시간과 공이 찻잎에 스며든다.

아홉 번의 힘든 과정을 거쳐야 깊은 맛의 생차가 되듯이

우리의 삶도 그렇게 서서히 익어가겠지.

 

이른 아침 초록의 향연이 펼쳐지는 차밭을 멍하니 걷다가

따뜻한 차를 천천히 마시면 무겁던 머리가 맑아지고

욕심으로 들끓던 마음이 조금은 정화된다.

가끔 그리하지 않으면 안개가 가득한 저 숲속처럼

한치 앞을 모르는 세상을 어찌 헤쳐 나가겠는가.

 

 

 

                                                       2021년 5월호 <좋은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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