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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은총의 루르드 성지

by 아네모네(한향순) 2021. 6. 20.

은총의 루르드

 

                                                                                                            한 향 순

 

프랑스 파리를 다시 찾은 것은 삼십 년 만이였다. 팔십 년대 중반 남편이 해외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던 중, 해외로 불러내어 같이 유럽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감회에 젖어 파리 시내를 돌아보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도시는 많은 세월을 머리에 이고도 아무런 변화 없이 우리를 맞아주었지만

젊었던 우리는 어느새 초로의 노인들이 되어 오래 된 추억을 떠올렸다.

파리에서 밤기차를 타고 이튿날 아침에 툴루즈에 닿은 뒤,

다시 버스로 한참을 달려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에 도착했다.

루르드는 프랑스 남서쪽, 피레네 산맥 근처의 작은 마을인데,

로마 가톨릭 교황청에서 인정한 성모님이 발현하신 곳이다.

 

 

매년 6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성지순례를 오는데, 중환자나 장애인,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갖고 이곳의 기적의 샘물이 나오는 마사비엘 동굴로 온다.

루르드에 도착하니 유난히 흰옷에 흰 머리 수건을 쓴 여인들이 많았는데, 그들도 이곳에 치료를

하러 왔다가 몇 달씩 생활을 하며 병자들을 돌보거나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소녀는 어려서부터 늘 병약했다고 한다. 10살 때, 콜레라를 앓아서인지 체구도 또래보다 작았고

오랜 지병인 천식까지 가지고 있어 늘 힘들어했다. 그러나 성격만은 단순하고 유쾌한 아이였다.

가난한 방앗간집의 맏딸로 태어난 소녀는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교도 다니지 못하여 문맹이었고,

제대로 종교 교육도 받지 못했다. 소녀가 14살이 되던 해, 땔감을 찾기 위해 강변을 서성이고 있었는데

이상한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고개를 들어보니 맞은편 동굴의 움푹 들어간 자리에 어떤 여인이 서 있었는데,

흰 옷에 하얀 베일과 파란색 허리띠를 두른 여인의 등 뒤로 알 수 없는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었는데 소녀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여인 앞으로 다가가서 잠시 묵주기도를 바친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 소녀가 바로 프랑스 남서쪽, 피레네 산맥 근처의 작은 마을 루르드에 살고 있던 <베르나데트 수비루>였다.

소녀는 보름동안 매일 동굴로 가서 젊은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은 소녀에게 조금씩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회개를 하고 죄인을 위해 기도하십시오.”라던가 사제들에게 전해 이곳에 성당을 지어

사람들이 몰려오게 하십시오.”라는 말을 했다.

또한 근처의 샘물을 가리키면서 그 물을 마시고 몸을 씻으라고 하였다.

 

 

소녀의 말을 듣고 많은 동네사람들이 동굴의 젊은 여인을 보기위해 몰려갔으나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모두 실망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베르나데트는 이 발현에 의혹을 품은 이들 때문에 오랫동안 많은 고통을 받고,

사람들의 관심을 피하느라 다른 도시로 피신을 했다.

그러나 1862년 로랑스 주교에 의해 루르드는 공식적으로 성모 발현을 인정한 순례지가 되었고,

그곳에 지금의 동굴 성당이나 로사리오 대성당, 성모마리아 대성당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우리 일행은 그곳에 계신 한국 수녀님의 안내로 곳곳을 돌아보고

우선 물로 몸을 씻는 침수를 받기위해 길게 늘어선 줄 뒤에 앉았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봉사자의 안내로 아베 마리아란 찬송을 부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려 순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때 왜 느닷없이 눈물이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가슴 밑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루르드에서는 유난히 치유의 기적이 많이 일어나서인지 어딜 가나

휠체어를 탄 병자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침수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줄이나,

성체조배를 받으려는 곳에는 어김없이 긴 휠체어의 행렬이 이어졌는데 어디서나 그들은 우선순위였다.

날이 어두워진 후에 열리는 촛불미사에도 병자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는데,

비가 뿌리는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들은 촛불을 밝혀들고 성당을 돌며 간절한 소망을 빌고 있었다.

더구나 이곳에서는 몸의 치유뿐 아니라 마음에 치유를 얻은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루르드에서 사흘 동안 머물면서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는지 회개하고 속죄하였다.

설사 일상으로 돌아가서 다시 망각 속에 빠진다 해도 나를 일깨워 준 것은

성모님의 크나큰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021년 가을호 <여행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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