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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향기로 봄을 알리는 매화

by 아네모네(한향순) 2014. 3. 1.

 

 

향기로 봄을 알리는 매화

 

한 향 순

 

매화는 물러설 줄 모르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여린 꽃망울을 틔운다.

매서운 추위와 찬바람 속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안개처럼 구름처럼 화사하게 피어난다.

 매화의 하얀 속살은 추운 겨울을 이기고 받은 자연의 선물이리라.

또한 겨울의 소멸과 봄의 생성을 담고 태어난 홍매의 붉은 빛은 겨울과의 오랜 싸움에서 생긴 혈흔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매화는 계절을 시기하지 않고 꽃을 피워 올린다.

 

 

올해도 섬진강변 광양의 매화마을에는 하얀 구름 동산처럼 매화가 필 것이다.

봄볕에 노곤해진 섬진강에 가면 꽃과 강과 구름의 경계가 없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하동에서 피기 시작한 매화가 섬진강을 넘어 백운산 자락으로 달려오며

능선과 골짜기를 구름처럼 뒤덮는다.

그리고 몽롱한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던 매화는 꽃잎 하나하나가 바람에 흩날려 제 몸을 산화시킨다.

활짝 핀 봄의 한복판에서 계절의 비늘처럼 떨어져 내리는 꽃비는 절정의 순간답게 화려하고 장엄하다.

 

 

 

화려하면서도 품위 있는 여왕 같은 홍매를 만나려면 양산 통도사와 구례 화엄사를 찾아간다.

통도사의 일주문을 지나 절 안에 들어서면 기품 있고 그윽한 매화향이 가슴을 파고든다.

드디어 사천왕문을 지나 극락보전을 돌아서면 수령 150년의 홍매 두 그루가 사람들을 반긴다.

하나는 붉은색 홍매로 영취매라고 하고 그 옆에 나란히 붙어있는 분홍색 홍매는 통도매라고 불린다.

두 나무는 서로 어우러져 고운 자태를 뽐내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조금 더 안쪽으로 올라가면 영각 앞에 350년 된 고매(古梅)가 있는데 바로 자장매로 불리는 홍매이다.

흐드러진 봄날이면 세 그루의 홍매를 만나러 온 사람들로 절집은 잔치 집처럼 술렁거린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구례 화엄사의 홍매는 색이 너무 검붉어 흑매라고도 한다.

조선 숙종 때 각황 전을 짓고 기념으로 계파선사가 심었다고 하니 족히 300년은 넘은 고매(古梅)이다.

키가 7~8미터는 됨직한 늘씬한 몸매에 휘늘어진 가지와 붉은 꽃의 자태는 보는 이들을 경탄으로 압도하고 만다.

고찰의 처마에 드리워진 풍경과 홍매가 마주보며 귓속말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은 마치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같기도 하다.

 

 

혼곤한 봄날, 그득한 매화 향에 빠져있다 보면 사는 게 뭐 별거던가.”라는 마음으로 상처 난 기억에 위로를 받고

마음이 그득해져서 내가 있던 저잣거리로 다시 발길을 돌리게 된다.

 

             

 

< 좋은 수필 > 2014년 3월호 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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