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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기억의 부름

by 아네모네(한향순) 2014. 1. 10.

 

 

 

초겨울의 햇살이 졸고 있던 오후, 가까운 곳에서 특별한 전시회를 한다기에 보러 나섰다.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의 좀 늦을 것 같다는 전화를 받고 혼자 전시장소를 찾았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낯선 건물에 빛바랜 전시 안내판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니 오래 비워두었던 건물 내부에는 부서진 벽과 떨어진 문짝이 서있고,

 

인적 없는 복도에는 교교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조금 겁이 나긴 했지만 대낮인데 어떠랴 싶어

 

 방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오래전에 쓰던 책상과 칠판,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세면기와 낡은 선풍기 등이 이곳이 강의실이나

 

연구실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낡고 부서진 공간에 작품들을 설치해 놓았는데 오브제 형식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새로운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아 그때는 이런 물건들도 있었지.”라는 놀라움과 함께 그 시절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작가가 무슨 생각과 의도로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때서야 이 전시의 제목이 <기억의 부름>이란 것이 생각났다.

 

한때 선망과 부러움의 장소였던 수원의 서울 농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사를 한 후, 여러 행정기관의

 

이견으로 이 건물이 십여 년 이상 그대로 방치되었다.

 

한때의 영광을 머리에 이고 쓸모없는 폐건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40여 년 전, 내가 한창 젊을 때는 딸기를 먹으러

 

이 학교 연습림에 찾아와서 친구들과 숲속을 거닐며 도도한 낭만을 즐기기도 했다.

 

 

기억은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는가. 수많은 추억을 안고 웅장하게 커버린 플라타너스 나무가

 

그동안의 세월을 말해주듯이 말없이 교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현대 수필 > 201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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