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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겨울의 투명한 보석, 고드름

by 아네모네(한향순) 2014. 1. 6.

 

 

  겨울이 깊어가던 어느 날, 민속촌에 갔다가 아주 반가운 풍경을 만났다. 하얗게 눈이 쌓인 초가지붕에 긴 얼음 덩어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정말 얼마 만에 만나는 고드름인가. 주거문화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뀌면서 우리 곁에서 사라진 모습이 아니던가. 아니 이제는 주택이 있는 시골에 가도 물받이가 잘 되어 있어 고드름 같은 것은 볼 수가 없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투명한 보석처럼 빛나는 고드름을 보자, 상념은 단박에 오십 년 전으로 돌아가 어릴 적 방학 때마다 찾아가던 큰 할머니 댁으로 달린다. 시골에 가도 숫기가 없던 나는 동네 아이들과도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그런 내가 귀찮고 딱했던지 할머니는 당숙뻘 되는 사내아이한테 나를 데리고 놀라고 부탁하셨다.

 

 

그 아이는 나를 데리고 귀신 놀이는 한다는 조개 무덤도 가고, 곳간 속에 들어가 숨겨둔 홍시를 찾기도 했지만 별로 재미가 없었다. 드디어 아이는 나를 뒤란으로 끌고 가더니 커다란 고드름을 따서 칼싸움을 하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쥐어주는 고드름을 가지고 방어만 했는데, 나중에는 내가 고드름을 따서 그 애의 고드름을 공격하였다. 고드름은 서로 부딪치자 ~” 소리를 내며 부서져갔다. 조신하던 여자아이가 그 놀이가 재미있어 손이 시린 줄도 모르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겨우내 평평 쏟아지는 함박눈을 머리에 이고 험한 추위를 견디며 제 키를 키워가는 고드름.

햇볕을 만나면 제 몸을 녹여 수정 같은 눈물을 만드는 고드름.

험한 세상을 살다보면 제각기 가슴에 녹지 않는 고드름 하나쯤은 키울 것이다.

새해에는 따뜻한 말과 눈빛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가슴에 품은 시리고 날선 고드름 하나 녹여 볼까나.

 

 

                                                        월간<불교> 1월호 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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