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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기/남프랑스 발칸

여행의 종착지 사라예보

by 아네모네(한향순) 2017. 10. 22.



사라예보는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등 발칸 지역에서도 중심에 위치하고 있고

 복잡한 역사를 지니게 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이다.  

이슬람 신도들이 도시민의  반 이상이고  무슬림 지구를 한번 돌아보면 터키의 중소도시 같은 기분이 든다.

 몇몇 관광식당을 제외하면 물가도 상당히 저렴하고, 아직도 건물에 총탄자국이 남아있는 곳을 보는게 어렵지 않다.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라예보 사건으로 영원히 역사에 남을 도시로,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의 개최지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아니라 유고슬라비아 도시 자격으로 치뤄졌다.

우리에게는 1973년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이에리사 선수가 금메달을 안겨 줬던 의미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던 비극의 현장 라틴다리와 옛날의 카페였던 뮤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878년 투르크를 축출하고 1908년에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공식적으로 합병하자 믈라다보스나 저항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이 왕위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을 암살했던 1914628일에 절정에 달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이 사건을 세르비아의 전시동원을 위한

구실로 이용하여 제1차 세계대전을 재촉했다.



1984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올림픽 스타디움은 현재 공동묘지로 사용되고 있다.

묘지마다 하얀색 십자가 또는 검은색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데

하얀색 십자가는 무슬림(이슬람교)을 상징하며 검은색 십자가는 정교도를 상징한다.

또한  한 도시 안에   성당과 모스크가 번갈아 자리를 잡고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조용히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이쪽 주민들이 너나할 것 없이

총을 들고 싸우면서 엄청난 난민이 발생하여, 199152만에 달했던 인구가

포위전 이후 30만명으로 급감한뒤 2012년 현재까지 제대로 회복이 안 되고 있다.

1,425일간 포위를 당해, 현대사에서 가장 오래 포위당한 도시[로 기록되었다.









거리 카페에서 조그만 탁자와 조그만 잔에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주민들








사라예보, 이 도시가 <님프랑스 발칸여행>의 종착지이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사진정리를 하고 블로그에

올리는데 한달이 훨씬 넘게 걸렸다.

제대로 꼼꼼히 하지도 못하고 대충 하는데도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리니

점점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건만 어깨통증을 참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보면 이런 내가 참 한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고

새로운 시각이 생기는 일은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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