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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바다의 신기루

by 아네모네(한향순) 2019. 9. 11.



바다의 신기루

 

일 년에 몇 번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래섬이 있다.

섬은 늘 바다 속에 잠겨 있다가, 심한 간조가 되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바다의 신기루이다.

전설의 모래섬에 내리자 바람과 파도가 뒤엉켜

춤을 추던 흔적이 나그네를 반겨준다.

바닷물이 채 빠지지 않은 넓게 펼쳐진 모래톱을 걷다보면,

아주 오래 전, 배를 묶었던 닻과 밧줄이 여기저기 널브러져있다.

한때 큰 배들이 들어와 이곳에서 정박하며 물때를 기다리던 곳이다.

뻘겋게 녹이 슨 닻과 삭아버린 밧줄은

번성하던 때를 못 잊어 그 시절을 기다리는 소품들 같다.

모래섬에서 허락받은 두어 시간이 지나고 물이 들어오기 전에

돌아 가야하는 우리는 허둥지둥 약속한 배를 기다린다.

망망대해에 혼자 떨어진 영토 하나,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하고 홀로 솟아오르는 섬.

어쩌면 우리도 각자 섬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여름이 되면 닿을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듯이

가끔 석섬의 모래톱을 그리워한다.

 




                                                                                            2019년 8월 <좋은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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